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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째주 · 2025
[7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기후위기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7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기후위기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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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6월 15일, 파리 북역에서 생제르맹 방향으로 향하던 열차가 전복되었다. 당시 프랑스 철도는 계급별로 칸을 나누어 운행했는데, 1등석 승객들은 쿠션이 있는 좌석에서 편안히 여행했지만 3등석 승객들은 나무 의자에 빽빽이 들어찬 채 이동해야 했다. 사고 당시 사망자 대부분이 3등석 승객이었다. 부유한 1등석 승객들은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지만, 과밀하게 탑승한 3등석 승객들은 서로 부딪치며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은 산업혁명 시대 계급 격차가 얼마나 잔인하게 생명의 가치마저 나누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기록되었다.

역사 사건

계급사회와 열차.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19세기 중반 유럽의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계급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열차 칸의 구조는 사회 계층을 그대로 반영했고, 이는 법적으로도 보호받았다. 상류층은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여행의 낭만을 즐겼지만, 노동자들은 가축 운반 칸과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이동해야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안전 규정마저 계급에 따라 달랐다는 점이다. 1등석에는 비상 탈출구가 있었지만 3등석에는 없었고, 사고 시 구조 우선순위도 티켓 가격에 따라 결정되었다. 철도 회사들은 이런 차별을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했다.

봉준호 감독의 Snowpiercer는 지구가 빙하기에 접어든 후 살아남은 인류가 영구 동력 열차에서 생활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한 커티스는 꼬리칸의 하층민으로,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을 먹으며 생존한다. 반면 앞칸의 상류층은 초밥과 와인을 즐기며 파티를 연다. 열차는 윌포드(에드 해리스)가 만든 '영원한 엔진'으로 움직이며, 각 칸은 철저히 계급별로 분리되어 있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메이슨은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다"며 이 질서를 신성시한다. 영화는 커티스 일행이 앞칸을 향해 전진하는 혁명의 여정을 따라간다.

영화 스틸

Snowpiercer (2013), 봉준호 감독. ⓒ Production Company

19세기 파리의 열차 사고와 Snowpiercer의 설산 열차는 놀랄 만큼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둘 다 닫힌 공간 안에서 계급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파리 열차 사고에서 3등석 승객들이 갇혀 죽은 것처럼, 영화 속 꼬리칸 사람들도 17년간 갇혀 살았다. 더 중요한 것은 두 경우 모두 '질서'와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이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실제 역사에서 철도 회사가 '경제적 필요'를 내세웠듯이, 영화에서도 윌포드는 '생태계의 균형'을 명분으로 학살을 자행한다. 결국 두 열차 모두에서 계급은 단순한 좌석 배치가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였다.

2025년 현재, 우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열차 안에 살고 있다. 주거 공간은 평수와 지역에 따라 계층화되었고, 교육은 사교육비 지출 능력에 따라 격차가 벌어진다. 팬데믹 시기에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화이트칼라와 현장에 나가야 하는 블루칼라 사이의 간극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기후위기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유한 국가와 계층은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로 무장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폭염과 미세먼지에 그대로 노출된다. Snowpiercer의 설산 열차가 은유가 아니라 현실의 정확한 묘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열차는 계속 달린다. 19세기 파리에서도, 영화 속 설원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모두 어떤 칸에 타고 있으며, 그 칸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하지만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모든 열차는 언젠가 멈춘다는 것이다. 파리의 열차는 전복되었고, Snowpiercer의 열차는 폭파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고 있는 이 거대한 사회라는 열차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쯤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다"는 메이슨의 말을 거부하고, 다음 칸으로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공식 예고편

Snowpiercer (2013) — 봉준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