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7월 18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외곽의 모리스 섬. 포성이 멈춘 새벽, 600여 명의 흑인 병사들이 남군의 요새 와그너를 향해 돌격했다. 매사추세츠 제54연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편성된 북부의 흑인 전투부대였다. 백인 대령 로버트 굴드 쇼가 이끄는 이들은 노예제 폐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총을 든 자유 흑인들이었다. 그날 새벽, 대서양의 파도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 함성은 단순한 전투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으려는 절규였고, 자신들도 이 나라의 시민임을 증명하려는 외침이었다.
남북전쟁 흑인 연대.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링컨 정부는 처음에 흑인들의 입대를 거부했다. 전쟁이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됐음에도, 백인들의 전쟁으로 규정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황이 악화되고 병력이 부족해지자, 1862년 해방 선언과 함께 흑인 징병이 허용됐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필요를 넘어선 혁명적 전환이었다. 무기를 든 흑인의 존재 자체가 백인 우월주의의 근간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제54연대의 병사들은 백인 병사 월급의 절반도 안 되는 차별적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유와 평등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웠다. 그들에게 전쟁은 생존을 넘어 인간성 회복의 투쟁이었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Glory는 바로 이 제54연대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겼다. 매튜 브로데릭이 연기한 로버트 쇼 대령은 보스턴의 명문 집안 출신으로, 흑인들의 지휘관이 되기를 자원한 이상주의자다. 덴젤 워싱턴이 열연한 트립은 탈주 노예 출신으로, 백인 권위에 대한 분노와 자유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화는 훈련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종적 편견, 동료애의 형성, 그리고 최후의 돌격까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덴젤 워싱턴이 태형을 받으며 흘리는 눈물은, 노예제의 상흔과 인간 존엄성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Glory (1989), 에드워드 즈윅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와 영화는 '증명의 욕망'이라는 지점에서 교차한다. 제54연대 병사들은 흑인도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군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했고, 영화 속 인물들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한다. 와그너 요새 공격은 군사적으로는 실패였지만, 그들의 용기는 흑인 병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영화는 이 역설을 통해 진정한 승리의 의미를 묻는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과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 무엇이 더 중요한가? 쇼 대령과 그의 병사들이 함께 묻힌 무명 전사의 묘지는, 죽음 앞에서야 평등해진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1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제54연대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남북전쟁 당시 시작된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군복을 입고 총을 들었던 것처럼, 오늘날 흑인들은 투표권을 행사하고 공직에 진출하며 자신들의 시민권을 증명해야 한다. 제도적 평등이 보장됐다고 해서 실질적 평등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와그너 요새를 향해 돌격했던 병사들의 후손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을 향해 돌격하고 있다.
1989년 제작된 Glory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라는 보편적 주제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한다. 제54연대 병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했듯이, 우리 역시 각자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증명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증명의 대가로 무엇을 잃고 있는가?

![[8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와 영화는 '증명의 욕망'이라는 지점에서 교차한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glory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