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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4째주] 장애인 노동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삶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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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자의 평론
생활자의 평론
오구마 에이지
생활자의 평론오구마 에이지 · 2022

2024년 4월 22일, 고용노동부가 한식 음식점업과 호텔·콘도업종에서도 외국인 고용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인력난 해소를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한다. 장애인 근로자들이다. 한국일보 한준규 정책사회부장은 "장애인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문을 열면서도, 장애인 노동자는 여전히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일본의 사회학자 오구마 에이지는 『생활자의 평론』에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가. 그는 199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 경제적 생산성만이 인간의 척도가 된 시대를 추적한다. 효율과 성과로만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배제되는 것은 '느린 사람들'이다.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받는다. 하지만 오구마는 되묻는다.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누가 정한 기준인가? 빠르게 일하는 것만이 가치 있는 노동인가?

삼성물산은 다르게 접근했다. 장애인을 위해 일자리를 만든 게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문서 파쇄, 명함 제작, 화분 관리. 속도는 느려도 꼼꼼하다. 실수가 적다. 이직률도 낮다. 생산성의 정의를 바꾸니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오구마는 말한다. 생활자의 시선으로 보면 다르다고. 집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널고, 아이를 돌보는 일상의 노동에는 시급이 없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누구도 살 수 없다. 장애인의 노동도 마찬가지 아닐까. 속도와 효율로만 재단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지 36년이 지났다. 그러나 장애인 근로자 상당수는 여전히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인력이 부족하다며 외국인에게 문을 열면서도, 이미 여기 있는 사람들의 노동은 평가절하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일하고 싶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벌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오구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활자'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산성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너무 많은 것을 재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려도 괜찮은 일터, 실수해도 다시 할 수 있는 일터는 정말 비효율적이기만 할까?

속도가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느림이 정확함이다.

장애인 근로자 평균 임금 추이
출처: 한국장애인고용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