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어느 날,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어섰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시급 5천원을 받았던 시절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의 60%에 불과하다. 법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직업재활시설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재활이라는 명분이 노동의 가치를 절반으로 깎아내린다. 같은 시간, 같은 땀방울이 떨어져도 임금봉투의 무게는 다르다.
독일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카스텔은 『사회문제의 변형』에서 임금노동이 시민권의 토대가 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19세기 유럽에서 노동자는 '위험한 계급'이었다. 그들이 온전한 시민이 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다. 임금이 단순한 보상을 넘어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면서다.
카스텔의 분석이 우리에게 무거운 것은 그가 말한 '사회적 배제'가 21세기 한국에서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일하지만 완전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재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배제의 논리가 그들을 시민과 비시민의 경계에 세워둔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다시 소집될 때마다 이 문제는 의제에서 빠진다. 논의 테이블에 앉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합의를 원칙으로 하되 여의치 않으면 다수결로 결정한다는 위원회의 운영 방식에서 소수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이런 차별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직업재활시설은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 지원금이 정작 노동자의 임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보호라는 미명 아래 착취의 구조가 고착화된다.
카스텔은 임금노동 사회의 위기를 경고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설 대안을 쉽게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금노동이 만들어낸 연대와 보호의 체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문제는 그 체계에서 배제된 이들을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가였다.
2025년 한국의 장애인 노동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19세기 유럽 노동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시민권의 문턱에서 멈춰 선 채로 반쪽짜리 인정만을 받는다. 최저임금의 60%라는 숫자가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정확히 보여준다.
미래의 누군가가 이 시대를 돌아본다면 무엇을 볼까. 경제성장과 복지확대를 자랑하면서도 가장 약한 이들의 노동은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그 모순이 만들어낸 균열은 지금도 깊어지고 있다.
2035년 어느 날,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어섰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시급 5천원을 받았던 시절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의 60%에 불과하다. 법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직업재활시설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재활이라는 명분이 노동의 가치를 절반으로 깎아내린다. 같은 시간, 같은 땀방울이 떨어져도 임금봉투의 무게는 다르다.
장애인 등록 현황 통계가 말하는 숫자는 단조롭다. 2019년 2.8%, 2020년 2.9%, 2024년 3.1%. 장애인 의무고용률의 완만한 상승이다. 그러나 로베르트 카스텔이 『사회문제의 변형』에서 분석한 '탈소속화' 현상은 이 숫자 뒤에서 진행되고 있다. 의무고용률 달성 기업 비율은 51.8%에 그치며, 미달 기업들은 부담금을 내고 고용 의무를 회피한다.
카스텔은 임금노동이 근대 사회에서 시민권의 토대가 된다고 분석했다. 노동을 통해 사회보험에 가입하고, 연금을 적립하며,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는 구조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근로자는 이 구조에서 배제되어 있다. 최저임금의 60%만 받는 이들의 4대 보험 가입률은 34.7%에 불과하다. 카스텔이 경고한 '보호라는 이름의 배제'가 제도화된 형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률은 2024년 기준 34.6%로 비장애인 고용률 68.3%의 절반에 불과하다. 고용된 장애인의 월평균 임금은 198만원으로 비장애인 평균 342만원의 57.9%다. 임금 격차는 10년간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장애인 노동이 '재활'의 프레임에 갇혀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의 반영이다.
스웨덴의 삼할(Samhall) 모델은 대안을 보여준다. 국가가 직접 장애인 고용 기업을 운영하며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한다. 연간 2만 3천명의 장애인이 일반 노동시장과 동일한 조건으로 근무한다. 한국의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은 '보호'를 명목으로 저임금을 정당화하지만, 스웨덴은 '동등한 노동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카스텔의 분석처럼 사회문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된다. 2035년, 우리가 이 시대를 돌아볼 때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시민권의 확장인가, 아니면 배제의 마지막 잔재인가. 의무고용률 3.1%라는 숫자의 이면에는 '누구를 노동자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놓여 있다.
장애인 등록 현황 통계가 말하는 숫자는 단조롭다. 2019년 2.8%, 2020년 2.9%, 2024년 3.1%. 장애인 의무고용률의 완만한 상승이다. 그러나 로베르트 카스텔이 『사회문제의 변형』에서 분석한 '탈소속화' 현상은 이 숫자 뒤에서 진행되고 있다. 의무고용률 달성 기업 비율은 51.8%에 그치며, 미달 기업들은 부담금을 내고 고용 의무를 회피한다.
카스텔은 임금노동이 근대 사회에서 시민권의 토대가 된다고 분석했다. 노동을 통해 사회보험에 가입하고, 연금을 적립하며,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는 구조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근로자는 이 구조에서 배제되어 있다. 최저임금의 60%만 받는 이들의 4대 보험 가입률은 34.7%에 불과하다. 카스텔이 경고한 '보호라는 이름의 배제'가 제도화된 형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률은 2024년 기준 34.6%로 비장애인 고용률 68.3%의 절반에 불과하다. 고용된 장애인의 월평균 임금은 198만원으로 비장애인 평균 342만원의 57.9%다. 임금 격차는 10년간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장애인 노동이 '재활'의 프레임에 갇혀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의 반영이다.
스웨덴의 삼할(Samhall) 모델은 대안을 보여준다. 국가가 직접 장애인 고용 기업을 운영하며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한다. 연간 2만 3천명의 장애인이 일반 노동시장과 동일한 조건으로 근무한다. 한국의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은 '보호'를 명목으로 저임금을 정당화하지만, 스웨덴은 '동등한 노동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카스텔의 분석처럼 사회문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된다. 2035년, 우리가 이 시대를 돌아볼 때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시민권의 확장인가, 아니면 배제의 마지막 잔재인가. 의무고용률 3.1%라는 숫자의 이면에는 '누구를 노동자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놓여 있다.
이 기사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종사자들의 열악한 임금 실태를 다루며, 재활이라는 명목 아래 이뤄지는 사회적 배제와 착취 구조를 비판한다.
기사는 임금노동이 시민권의 토대가 돼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며,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고발한다.
기사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종사자들이 법적으로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의 정책적 개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