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아산이 광운대역 청년주택 프로젝트에서 400억원의 채무를 인수했다. 역세권 청년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사업이 시공사의 부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채무인수. 그 두 글자가 품은 무게를 생각한다. 청년을 위한다던 정책이 왜 시공사의 짐이 되었을까. 누군가는 이를 부동산 시장의 자연스러운 순환이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의 언어가 모든 영역을 침범하는 현상을 추적한다. 그는 묻는다. 주거가 상품이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집이 투자 대상이 되면 누가 배제되는가.
청년주택이라는 이름표를 단 건물들이 늘어난다. 정부는 공급 실적을 발표하고 언론은 숫자를 보도한다. 그런데 정작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가. 월세를 내며 방 한 칸에 머물거나, 부모의 집에서 독립을 미루고 있다.
샌델이 지적한 시장 논리의 확산은 한국의 청년주택 정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공공성을 표방하지만 결국 수익성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청년을 위한다는 명분과 사업성을 추구하는 현실 사이에서 정책은 표류한다.
400억원. 그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한 기업의 재무적 부담일까. 아니면 청년 주거 정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증거일까. 채무인수라는 차가운 용어 뒤에는 집을 구하지 못한 청년들의 현실이 숨어 있다.
샌델은 시장가치와 비시장가치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거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 청년들에게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다. 하지만 정책은 여전히 공급량과 수익률의 언어로 말한다.
광운대역 청년주택의 채무인수 소식을 들으며 생각한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어떤 집을 약속했는가. 그리고 그 약속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당신이 매일 지나는 그 역 앞 건물이 청년주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가. 광운대역 청년주택 프로젝트가 400억원 채무인수로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8월 18일 전해졌다. 현대아산이 시공을 맡은 이 건물은 이제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청년주택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을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명칭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룸, 고시원, 반지하가 청년들의 주거를 대변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주택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냈고, 역세권마다 이런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400억원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이것은 단순히 건축비나 토지비의 합이 아니다. 누군가의 주거권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의 총합이다. 시공사, 금융기관, 공공기관, 그리고 입주할 청년들. 각자의 계산법은 다르지만 모두가 이 숫자 안에서 움직인다.
김현미가 쓴 『젠더와 사회』(2014)는 주거를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회적 관계의 장으로 본다. 청년주택이라는 명명 자체가 이미 특정한 삶의 방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이되 임시적인, 개인적이되 관리되는 삶. 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청년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 묻는다.
실제로 청년주택의 평균 거주 기간은 2.3년에 불과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정적인 주거가 아니라 통과의례라는 뜻이다. 청년들은 여기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떠난다. 더 나은 곳으로? 아니면 또 다른 임시 거처로?
채무인수라는 금융 용어가 낯선 당신에게 설명하자면, 이것은 누군가의 빚을 다른 누군가가 떠안는다는 뜻이다. 현대아산이 떠안은 400억원의 빚은 결국 임대료로 회수될 것이다. 그 임대료는 누가 내는가. 바로 청년들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청년층의 월평균 주거비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8년 45만원에서 2023년 68만원으로 51%나 올랐다. 같은 기간 청년층 평균 소득 증가율은 23%에 그쳤다. 이 격차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광운대역 청년주택에는 40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400개의 방, 400명의 청년, 400개의 꿈. 하지만 이들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진짜 집을 가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청년주택이 징검다리인지 함정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김현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주거 불안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청년주택이라는 해법이 과연 이 구조를 바꾸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유지하고 있는가.
『젠더와 사회』이 청년주택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김현미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청년주택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김현미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청년주택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당신이 내일 아침 광운대역을 지날 때, 그 청년주택 건물을 한 번 올려다보길 바란다. 400억원의 무게가, 400명의 청년이, 그리고 우리 사회의 주거 정책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기사는 청년층의 주거비 급증과 짧은 거주기간 등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어, 이 이슈의 깊은 이해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지난 10년간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주택 개념을 만들어내고 건설해온 과정을 보여줘, 이 정책의 향후 전개 방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하며, 청년주택 건설 등 정책적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