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하며 그들의 역사를 정리해보자
1. 이주노동자의 역사
영화 <타이타닉>은 2천 명 이상의 승객을 싣고 1912년 유럽에서 출발하여 대서양을 건너 ‘꿈의 나라’ 미국으로 건너가던 초대형 여객선이 출항한 지 4일 만에 거대한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과정과,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잔잔히 펼쳐지는 진실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이 영화를 좀더 큰 맥락에서 읽는다면, 우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예컨대 1881년에서 1930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이 50년 동안 합법이민자만 해도 무려 3천만 명이다.
그런데 이런 국제 이주노동은 자발적이거나 반강제적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강제 속에 일어나기도 했다. 영화 <아미스타드>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1830년대 말 쿠바에서 출발하여 미국으로 들어가는 노예운반선인 아미스타드호에 관한 이야기다. 절망적인 노예선처럼 짐짝처럼 묶여 있던 53명의 노예 중 신케이 등 몇몇 주모자들이 선상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끝에 미국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이 나온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원래 아프리카의 숲속에서 가난하지만 소박하게 잘 살다가 갑자기 노예사냥꾼들과 노예상인들에 의해 원래 터전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분리되어 일개의 노동력 상품으로 강제 변신된 부분이다. 특히 이들이 노예선에 상품 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 운반되다가, 병이 들거나 쇠약해져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을 때, 노예상인들이 이들을 밥도 주지 않고 쓰레기처럼 바닷속으로 던져버리는 부분은, 자본이 노동력 상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그 본질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사실 이런 일은, 믿기지 않겠지만,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예컨데 2001년 아프리카에서 2백 50명의 어린이 노예를 싣고 떠났던 나이지리아 국적의 배가 어린이의 행방이 묘연해진 채 발각된 사건, 중국에서 수십 명씩 냉동선 같은 밀입국선을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다 얼어죽거나 산 채로 적발된 사건 등이 그것이다.
한편, 아미스타드호의 노예들이 서인도제도에 도착한 뒤 일차적으로 다른 장사꾼이나 사용주들에게 팔리기 직전, 노예상들은 이들에게 마치 상인이 상품을 싱싱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기름칠을 하듯 온갖 오일과 크림을 바르고 때깔이 좋게 나도록 만든다. 일종의 마케팅 포장술인 셈이다. 이러한 상품화 과정에 ‘우리도 같은 사람’임을 선언하는 과정이 ‘선상반란’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의 한 단면만 보여줄 뿐 실제론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아프리카로부터 남미나 북미로 상품 노예화되었고, 원하지도 않은 국제 이주노동자가 되어 농업노예나 산업노동자가 되었다.
원래 이민(migration)이란 말의 어원은 새가 모이를 찾아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들이 먹을 것, 즉 삶의 기회를 찾아 스스로 이동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19세기가 아니라 인류사 초기부터 있던 일이다. 그러므로 자주적 선택에 의해 자유롭게 이동하여 일하며 사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디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간단치 않다.
우선, 오늘날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말할 때 우리는 이미 ‘외국인’이라는 개념, 즉 ‘국제’ 차원을 전제로 깔고 말한다. 참고로, 나는 여기서 ‘외국인 노동자’란 말 대신 ‘국제 이주노동자’라 쓰고자 한다. 물론 ‘외국인’과 ‘내국인’은 그 구분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나 본질적으로 손님과 주인을 배타적으로 구분하는 개념이며(사실 모든 생명체, 모든 인간은 모두 손님이자 모두 주인이다), 현실에서는 그를 매개로 곧잘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쓰이기에, 가능한 한 객관적 의미를 담는 ‘국제 이주노동자’란 표현이 낫다고 본다. 이른바 ‘민족국가’가 형성된 18세기 이후 사람들이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며 사는 경우, 이를 ‘국제 이주’리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국가’의 형성기는, 굳이 어려운 이론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형성기와 일치한다. 자본주의 형성이란 대내적으로 ‘통일’ 과정이며 대외적으로 ‘분리’ 과정이었다. 결국 국제 이주(노동자)의 역사는 자본주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이주민 나라인 미국의 경우, 18세기에 국가가 형성될 무렵이나 그 이후 약 1백 년간, <아미스타드> 노예들에서 보이는 바대로, 비자발적 · 강제적 국제 이주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 뒤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형식적으로나마 ‘노예해방’이 선언되는 한편, 노동운동이 발흥하자 자본의 새 전략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량 유입하는 길로 변화했다. 이것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미국에 대량으로 이주민이 유입된 역사적 배경이다. 물론 1920년대에는 나라별 이주민 할당량이 정해지는 등 이주제한정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거시적으로 보면 이주민들이 계속 유입되었고 이들이 미국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큰 흐름을 형성했다. 2차대전 이후로도 세계 각국에서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꾸준이 유입되었지만, 특히 1980년대 이후로는 합법이민자만도 해마다 평균 8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증가 추세이다. 물론 1960년대 이후, 특히 흑인들이 차별철폐를 외치며 인권운동을 열심히 펼친 결과, 오늘날 공식 법제상으로는 아프리카계 흑인, 남미계 히스패닉, 아시아계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는 듯 보이나 사회심리적 차별은 여전하며, 특히 노동시장에서는 일자리 기회는 물론, 임금 등 노동조건 측면에서 사실상의 차별이 ‘철의 법칙’처럼 존재한다.
세계 전체적으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이 온 세상을 하나의 시장과 하나의 공장, 하나의 이윤 공간으로 재편해온 지난 20년간 해마다 약 1천만 명의 사람들이 고향 땅을 버리고 외국으로 삶의 기회를 찾아 떠났다.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오늘날 약 2억 명 정도(지구 인구의 3%)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외국’에 나가 노동하며 산다. 그러나 이 통계조차 ‘국적’ 기준의 분류에 따른 것이기에 국적이 바뀐 경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통계에 빠진다. 공식 미등록(‘불법’보다 ‘미등록’이라는 표현이 더 객관적이다) 이주자들만 해도 세계적으로 3천만 명이다. 이렇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 등이 근본적으로 세계 각국의 풀뿌리 민중들로 하여금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양식을 포기하게 하고 그 대신 시장 중심의 생활양식을 구조적으로 강제하기에, 합법이든 불법이든 온갖 형태의 국제 이주문제가 증가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인간답게 살 기회를 박탈하는) 비인간적 · 반생명적 구조조정이 가속화될수록 이런 국제 이주는 더 강해질 것이고, 이를 국제적으로 통제하려는 장치들도 강화될 것이며, 따라서 이를 둘러싼 이해 갈등도 증폭될 것이다.
2. 이주노동자 문제의 뿌리
그렇다면 이주노동자 문제의 근본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보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내면적 욕구에 있다. 1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간 1845년경 대흉년, 죽음과 굶주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이나 그 이전인 17세기에 국가의 탄압 때문에 청교도 정신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고자 도미한 영국인들, 또 1960년대 이후 서독 광부나 간호사로 건너간 수만 명의 한국인 노동자들, 나아가 최근 15년 사이에 한국으로 몰려든 수십만의 동남아 이주노동자들 모두가 ‘보다 인간답게 잘살아보려는’ 본연의 욕구 때문에 정든 고향을 등졌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의 단면이다. 즉 이것은 떠나는 자의 주체적 선택의 문제일 뿐,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객관적 상황은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의 다른 면, 즉 국제 이주의 배경에 자립적 생활양식의 붕괴 및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변수가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21세기 전쟁』이라는 책에서 라모네는 “이 시대 최고의 권력은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기업”이라며 세계화를 주도하는 초국적기업과 금융자본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기존의 정당, 노조, 언론과 같은 전통적 대항세력을 무력화하고, 나아가 국가까지 길들일 정도의 권력을 휘두른다. 이 와중에 아동노동이 세계화되어 현재 약 2억 5천만 명의 어린이가 따뜻한 보호와 즐거운 교육 대신 가혹한 노동으로 내몰려 있다. 후진국, 개발도상국은 말할 나위도 없고 선진국이라는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연합에서조차 아동노동을 하는 어린이의 수가 2백만 이상에 달한다. 나아가 지구 전체 70억 인구 중 80%(56억)가 궁핍한 삶을 살고 있으며 지금도 굶주리는 사람이 거의 15억에 이르고, 하루 1달러 이하로 사는 이가 20억 명, 2달러 이하로 사는 사람이 거의 절반인 34억이다.
또 생태운동가이자 학자인 볼프강 작스에 따르면, 가진 자들이 주도하는 ‘개발’과 ‘성장’의 패러다임으로 지난 50년간 전 지구 경작지의 3분의 1이 황폐화되었고 열대림의 3분의 1이 증발함으로써 땅과 사람의 분리가 가속화했다. 예컨대, 필리핀의 민데나우 섬에서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소비자용 판매품이 아닌 자립용 먹거리를 재배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진국 ‘대중’ 소비자를 위해 슈퍼마켓을 채우려는 농산물 기업들, 예컨대 돌(Dole)이나 델몬트같이 땅에 굶주린 기업들이 본거지인 미국을 넘어 필리핀에도 들어간다. 필리핀같이 가난한 국가는 외환 확보에 굶주린 상태이므로, 결국 농업대기업들이 필리핀의 민데나우에서도 환영을 받으며 침투한다. 그리하여 지난 15년간 민데나우 섬에서는 거대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파인애플 생산을 네 배로 늘렸다. 이제 민데나우 섬은 경작지의 50%가 파인애플, 커피, 목재, 코코넛 등을 재배하는 외국 회사에 의해 통제된다. 극히 일부 주민들은 그런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겠지만 대부분의 소농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먹거리를 생산하던 땅에서 쫓겨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한다. 그들 중 일부는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 일본 등지로 국제 이주를 떠난다.
비슷한 사례는 저항시인인 반다나 시바의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에서도 나타난다. 즉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쉽고도 싸게 사먹는 새우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보자. 현재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 각국 해안에서 자생하는 망그로브 숲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그리하여 그곳에 살던 토착민도 사라진다. 대신 그곳에는 대자본이 경영하는 새우 양식장이 들어서고 돈이 되는 새우를 집약적으로 대규모 생산한다. 모두 잘사는 나라로 수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와중에 어민이나 소농들이 몰락하고 해안 생태계는 파괴된다. 삶의 기회를 잃은 사람들은 도시 이주나 해외 이주를 떠난다.
이런 식으로 삶의 자율성을 잃고 ‘궁핍’으로 내몰린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으로 국제 이주를 떠나고, 남미인들이 북미 이주를, 동남아인들이 한국 등지로 국제 이주를 떠나는 것이다.
후진국인들이 중진국으로, 중진국인들이 선진국으로 이동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라면, 선진 자본이 보다 싼 생산지나 시장을 찾아 중 · 후진국으로, 중진 자본이 보다 유리한 곳을 찾아 후진국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와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선진국들 내부의 이동이나 중진국 자본이 선진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이주노동자 문제의 주류는 아니다.) 요컨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최빈국에 있는 미숙련 여성 노동자의 최저 임금 수전에서부터 구미의 최부국에 속하는 숙련 남성 노동자의 최고 임금 수준에 이르기까지 세계 노동시장은 피라미드형 계단을 갖는다. 물론 이 계단은 아무나 노력만 하면 쉽게 밟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연속형 계단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유리 천장’이 있거나 중간에 골이 깊고 넓게 패인 ‘단절형 계단’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이른바 ‘인적 자본’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지극히 소수는 상당히 높은 단계까지 진출한다. 이들은 압도적 다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나도 할 수 있다”는 환상의 토대가 된다. 미국이나 호주가 전통적으로 그러한 계단을 비교적 높이 올라갈 기회가 많은 사회라면 한국이나 일본은 그런 기회가 대단히 제한된 사회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은 그 중간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총괄적으로 이 계단들은 엄격한 통제 아래에 있으며 그 위를 오르려는 사람들에게는 ‘단절의 벽’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국제 이주노동자 문제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 자체로만 파악하기보다는 세계 자본주의와의 연관성을 살펴야 그 그림이 제대로 보인다.
그런데 신고전파 학자들이 말하듯 이런 노동력 이동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임금 등이 척척 잘 맞아들어간다면, 그리고 문제가 그런 것뿐이라면, 우리는 아무 ‘문제’도 발견할 수 없다. 또 그런 문제들을 제도학파처럼 정부 정책이나 법 · 제도 따위로 잘 관리하기만 한다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는 입장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으나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사실 사태의 본질은 좀 더 복잡하다. 이동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유이동이나 자유취업, 정당한 대우, 차별철폐 등이 문제일 것이고, ‘외국 인력’을 쓰려는 자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값싸면서도 다루기 쉽고 쓸 만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나라 전체를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수급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고 다른 정책 영역과의 충돌문제도 신경 써야 하며, 합법과 불법을 가려 통제하려 할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를 총괄적으로 관장하는 입장(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이해관계를 걸고 있는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세계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이들의 범세계적 단결을 막아야 한다. 만일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예외 없이’ 총단결하여 오직 하나의 인간적 요구, 예컨대 하루 4시간 노동과 생활임금, 연간 6주간의 휴가 등을 통일적으로 요구한다면 이 세상 어느 자본도 피할 길이 없다. 그렇게 되면 어느 자본도 굳이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기려 하거나 외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발전’을 위한 ‘동기 부여’ 차원에서 각종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하나 사실 이것이야말로 분열과 경쟁을 통해 지구 노동력의 지배를 꾀하려는 전략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본주의 체제 입장에서는 모든 나라의 사회 · 경제적 조건이 ‘달라야’ 한다. 그래야 지배와 통제가 쉬워지니까. 후진국, 중진국, 선진국이 역사적으로 격차가 존재해온 과정이 이미 그러한 (선진)지배자들의 통치와 지배(즉 식민지 제국주의 정책)의 산물이거니와 이러한 후진국 · 중진국 · 선진국 사이의 구조적 격차(유지 및 증대=이것은 신식민주의나 신자유주의를 통해 구현된다)는 다시 역으로 전 세계 노동자들로 하여금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동하게 만드는, 그래서 ‘우리도 너희처럼 잘살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드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허리띠 졸라매기’식 경쟁과 분열의 메커니즘은 결국 전지구적 지배구조를 공고하게 만든다. 한편, 그러한 경쟁과 분열의 메커니즘은 행위 주체인 우리 자신이 ‘강자와의 동일시’를 강하게 할수록 더 탄탄하게 움직인다.
그러면 과연 이 분열의 메커니즘은 무엇을 매개로 하는가, 그리고 ‘강자와의 동일시’란 무엇인가? 그것은 요컨대, 약자인 내가 상대방인 강자와 한판 붙어 통쾌하게 이길 수도 없고 아니면 잽싸게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유일한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다. 즉 강자 앞에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하며 ‘알아서 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약한 부분은 애써 보지 않으려 하거나 감추어버리고 강자 행세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저 밖에 있는 다른 약자들을 마치 자기와는 전연 다른 존재들인 것처럼 쌀쌀맞게 대한다. 그래야 자기가 강자인 것처럼 비춰지니까…….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강자와의 동일시’를 하게 되면 이제껏 적군이던 강자가 아군이 되는 반면, 소통과 연대를 통해 힘을 합쳐야 할 아군은 사실상 적군처럼 경멸 대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적군이 아군 되고 아군이 적군 되는’ 이 역설적 현상,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이자 해결의 실마리다.
예컨대 미국으로 이민 간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은 백인들로부터 차별을 당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강자와의 동일시’가 진행된 나머지, 같이 차별받는 흑인들을 소통과 연대의 주체로 보기보다는, 그리하여 힘을 합쳐 백인 우위의 구조와 행위들을 부수는 데 노력하기보다는, 그들 위에 군림하려 들며 그들을 무시하거나 편견과 차별로 대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실제로 미국 내 많은 한국인은 흑인들이 많은 지역을 거리낌없이 ‘슬럼가’라 하며, 자녀들을 가능한 한 흑인이 없는 학군에 보내려 한다.) 또,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국 기업주들에게 멸시와 억압을 받던 한국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같은 생산 라인에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오자 이들과 함께 힘을 합쳐 인간다운 조건을 쟁취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강자’ 행세를 하며 이들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행위를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렇게 분열의 경계선은 국적이나 인종을 매개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니면 합법성을 매개로, 또는 성별 · 직업별 · 숙련별 · 소득별 · 학력별 · 능력별 등을 매개로 나타난다. 현실에서는 이런 분열의 경계선이 이중, 삼중으로 복합되기도 한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런 식의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왜 국경 통제나 공항 입국 심사가 그토록 철저하고 삼엄한지, 왜 노동력 국제 이동이 철저한 관리와 통제 속에 전개되는지, 왜 나라마다 애국심이나 국가의식을 그토록 강조하는지, 왜 미등록 노동자의 전면 사면과 국제 이주 노동의 자유를 꺼리는지 따위를 정확히 이해하게 도와준다.
3. 자기 정체성을 찾는 행위자로서의 이주노동자
우리는 삶의 동기와 관련해 이주노동자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외국에 가서 노동으로 돈을 번 뒤 귀국해서 살려는 노동자, 둘째는 외국에서 노동하고 돈을 벌면서 아예 눌러살려는 노동자다. 현실적으로는 외국에서 돈을 번 뒤 외국(아니면 다른 나라들)과 본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들이 앞서 말한 관점에서 보자면 진짜 중요한 문제는 본국으로 돌아가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과연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가이다. 본국이든 외국이든 노동하며 돈 버는 과정에서 부당한 현실에 문제 제기를 하며 처지가 비슷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잘못된 구조를 고치려는 모습인지, 아니면 보다 더 강한 자에게 빌붙어 약자를 억누르거나 아니면 훗날 자신도 돈 많은 강자가 되어 본국이나 다른 곳으로 간 뒤 자기를 학대하던 강자의 모습을 재현하는 사람이 되는지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만일 우리가 이주노동자 문제를 (삶의 주체적 선택이나 객관적 조건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인정한다면, 더 이상 민족주의적 편협성에 갇혀 혈통이나 문화가 혼합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거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 상실에의 두려움을 갖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이미 1백 년 전에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이 강조했듯, “이주노동자들에게 들어올 길을 활짝 열어주라. 그리고 그들이 일단 들어오면 함께 조직하여 투쟁하라”라는 구호가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마찬가지로 “이 세상 어디로든 나가. 그리고 현장의 그들과 함께 조직하여 삶의 자율성을 쟁취하라”도 전략 구호가 된다. 이 과정에서 국적, 성별, 학력, 인종, 종교 따위는 서로 차이를 인정하며 넘어야 할 허구적 경계선이지 우리가 그 속에 갇혀버리는 쇠창살이 되어선 안 된다.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로렌스에 있는 한 방직공장에서는 약 3만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삭감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저항하여 파업을 했다. 이들 대부분은 유럽 등 외국에서 이주해온 노동자였고, 그 45%는 여성이었으며, 12%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였다. 파업의 계기는 법정노동시간이 주 56시간에서 54시간으로 단축되자 공장주들이 기계 속도를 높이고 임금을 줄인 것이다. 파업노동자들은 당시의 진보적 산별노조인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에 파업지도부 구성을 촉구했다. 순식간에 독일, 이탈리아, 폴란 등 25개국 이상의 국적을 가진 파업지도부가 구성되어 비폭력 파업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우리는 빵(생존권)과 장미(인권)를 모두 원한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행진하였고,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사용주와 경찰로부터 온갖 위협이 있었음에도 파업노동자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다른 도시의 우호적 시민들에게 돌보아주기를 부탁하는 방식으로 파업의 공명을 확장했다. 여론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약 두 달 만에 파업노동자들은 사용주들의 양보를 끌어냈는데, 특히 임금삭감 철회는 물론 생활임금 인상과 파업노동자 보복금지 조치를 쟁취했다. 이 싸움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객관적으로 존재한 국적별 분열의 경계선을 주체적으로 뛰어넘었다. 나아가 파업자들과 일반 시민과의 분열도 슬기롭게 넘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작지만 성공적인 투쟁의 토대였다. 물론 오늘날 그처럼 투쟁하던 사람들의 2세, 3세들은 또다시 ‘강자와의 동일시’ 패러다임에 갇혀 자본과 권력이 쳐놓은 온갖 분열의 경계선 속에서 강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서로 분열과 경쟁을 부추길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강자와의 동일시’를 깨려는 ‘탈동일시 투쟁’도 여전히 계속된다.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는 1999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건물 청소 및 환경미화 노동자의 저항을 다룬다. 이 영화에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불법이주하여 노동하는 동생 마야와 고향의 가족을 위해 매춘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던 언니 로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첫 달 월급은 감독관에게 상납해야 하고 의료보험은 물론 휴가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나 가녀린 마야가 노조활동가인 샘을 만나 사랑과 연대로 뭉치면서, 삶의 문제는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행위의 문제임을 서서히 깨닫는다. 마침내 신분 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허덕이던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적 행위의 주체로 나서 결국 ‘빵과 장미’를 얻는다. 한편, 어려운 동료를 돕기 위해 돈을 훔치기도 했던 마야가 경찰에 체포된 뒤 미국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강제추방되는 마지막 장면은 ‘국제 이주’ 문제의 본질을 넌지시 비춘다.
1980년대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활기를 띠자 한국의 자본도 노동비용의 저렴화와 노동 통제의 편리성을 노리고 한편으로는 해외투자전략을, 다른 편으로는 이주노동자 유입 전략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해마다 수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왔고, 2004년 현재 미등록 상태를 포함하여 약 4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 체류하며 일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조는 물론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같은 시민 사회단체, 대학생연대조직, 그리고 이주노동자 자신의 노조 등이 이주 노동자 권익을 위해 싸우고 있다. 특히 1994년 14명의 미등록 노동자들이 산재보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한 결과 산재보상을 쟁취했다. 이어 1995년 1월에는 명동성당에서 네팔 노동자 13명이 쇠사슬을 몸에 감고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산업연수제도를 폐지하고 노동자 신분을 인정하라고 농성을 벌였다. 그 결과 연수생들에게도 최저임금 등 몇 가지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노동부 지침이 나왔다. 또 지난 7년 이상 시민사회단체들과 노동조합이 힘을 합쳐 산업연수제 폐지와 노동허가제를 골자로 하는 이주노동자보호법 제정운동을 벌였다. 한편 2001년에는 ‘평등노조’가 만들어지고 그 산하에 이주노동자지부가 만들어져 비로소 이주노동자를 주체로 세우는 독자적 이주노동자운동이 출범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는 그간 온갖 어려움에도 연수생제 철폐와 노동허가 쟁취, 사업장 이동의 자유 등을 외치며 일관된 싸움을 전개했다.
2003년 7월, 국회는 고용허가제(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도 예전보다는 진전 부분이 있으나 연수생제가 완전 폐지된 것도 아니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아 이주노동자 기본인권 및 노동권 보장에 한계가 많다. 특히 2003년 11월 중순 이후, 4년 이상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약 10만 명 정도)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 단속을 앞두고, 강제추방의 불안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러한 반인권적 강제추방조치에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를 비롯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강제단속에 저항하며 “강제추방 중지,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등을 내세우며 이후 오랫동안 농성투쟁을 하기도 했다.
4. 해결의 실마리
과연 이주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이 문제는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우리가 단순히 국제 노동력 이동의 수급 문제로만 취급한다면 의외로 문제는 간단하다. 각 나라가 필요한 인력을 공개하고 그에 걸맞게 수량을 조절하여 이동시키면 된다. 그러나 ‘노동력을 들여왔더니 사람이 들어왔다’라는 말이 있듯 이주노동자들은 나름의 꿈과 감정과 의견을 지니고 주체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노동력 수급의 양적 통제는 어렵게 되며, 오히려 자본주의 구조나 각 나라의 법제도적 구조까지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도 말한 바 이주노동자 문제를 그 자체로만 보기보다는 세계적 자본 축적과의 연관에서 바라본다면 현재 진행 중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기초에 있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대단히 복잡한 차원을 노정하고는 있지만 이주노동자와 연결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러한 구조들이 토착적인 사람들을 원래의 삶터에서 편안하게 살지 못하도록 ‘삶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적이나 성별, 인종 등 온갖 분열의 경계선을 통해 사람들을 불평등한 ‘차별의 경계선’ 속으로 재편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경제적 혹은 경제 외적 강제를 통한 ‘삶의 자율성 파괴’나 ‘차별의 경계선’ 자체를 인정하거나 간과한 채, 단지 사다리꼴의 위계질서 속에서 보다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데 해결의 초점을 맞추거나 아니면 최소한 다른 유사한 자들과 동등 처우만이라도 받게 제도적 개선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단기적 개선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원적 해결은 되지 못한다. 그러한 수직적 상승 속에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은 ‘강자와의 동일시’에 다름 아니며, 그 과정에서 약자인 타인을 비인간화시킴은 물론 사실상 자기 자신마저 비인간화시킨다. 반면에 보다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을 ‘동일한 그물망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소통과 연대로 수평적 공존을 모색하는 해결방식은, 그리하여 자율과 자치를 기본으로 자신의 삶터에서 삶의 자율성을 회복하고 편견과 차별 없이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삶의 방식은 모두에게 인간미의 상승을 체험하게 한다. 즉 개인적 차원에서는 출세한 강자로부터 탈동일시, 나라 차원에서는 선진 강대국으로부터 탈동일시, 시스템의 원리 차원에서는 부국강병과 개발성장 패러다임으로부터 탈동일시를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이주노동자) 현실을 보면 근원적 해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단기적 개선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연수생제도의 변화와 고용허가제의 도입 등 조금씩 개선은 되고 있지만, 미등록 노동자 ‘강제추방’에서 보여지듯 핵심문제는 여전하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삼중의 인종주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업가에 의한 경제적 차별, 한국인 노동자와 시민에 의한 사회적 차별, 그리고 정부에 의한 제도적 차별 등 복합적 차별주의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인종주의적 현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묵인하거나 부인하는(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기기만’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을 시키고도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는 기업가는 물론, (이란주 씨의 『말해요, 찬드라』에서 잘 나타나듯) 한 네팔 여성을 한국말을 못한다고 행려병자로 취급하여 무려 6년 이상 정신병원에 가두어놓은 사건, 엄연한 노동자를 ‘연수생’이라며 노동 3권을 보장하지 않는 정책 등이 그 증거다. 결국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위계 시스템을 허물지 않고는 경쟁과 분열을 강요하는 냉혹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우리 모두가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해 개인적 동정심을 넘어 그들과 함께 소통하고 연대하여 억압과 차별의 사슬을 같이 깨뜨려야만 모두가 그간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고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처음에는 (어차피) 어디 가도 잡힐 테니 농성이라도 해야 한다던 친구들이 지금은 노동권이 뭔지 알게 됐어요. 농성에 지치다가도 생각이 많이 바뀐 친구들을 보면 힘이 납니다. 아무리 위험해도 밖으로 나가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우리 문제도 풀린다는 생각입니다.” (2003년 11월 16일 이후 ‘강제추방’ 정책에 반대하여 한 달 이상 명동성당에서 농성 투쟁을 한 네팔 노동자 샤멀 타파)
덜 핍박받는 자보다 오히려 더 핍박받는 자가 (함께 핍박의 사슬을 깨자고)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대안은 바로 이 떨리는 손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꼬옥 잡는가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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