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절대로 금한 도라무깡앞에 있었다. 개천에 가로로 잇대어 있는 직경 1미터쯤의 시멘트 하수관들, 그것들은 금세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내 발도, 플라스틱 슬리퍼도 젖어갔다. 그래도 돌아서면 다시는 여길 건널 수 없을 것 같았다.

 

네 번째 하수관은 절반 이상이 깨져 철근 골조에 시멘트 덩이들이 꼬치처럼 꿰여 있었다. 그 밑으로 콸콸 빠져나가는 흙탕물이 보였다. 몸이 떨렸다. 이제는 되돌아가나 마저 가나 마찬가지, 머릿속에 교과서 활자로 지나갔다. “미끄러지면 다리가 부러지든지 머리가 깨진다.”

 

그때 나는 보았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필터를 갈아 끼운 듯 산등성이도 노랑이 추가되어 국방색이 되고, 저기 우리 동네 지붕들은 주황 곰팡이가 핀 듯했다. 어머니가 곗돈 떼였을 때 하늘이 노래졌다더니, 정말로 그랬다. 그런데 필터가 다시 진분홍으로 바뀌었다. 신축 중이거나 철거 중인 건물들 사이에 논밭이 벌겋게 찍혀 있는 들판을 바람이 외치며 달려오고, 피눈물처럼 굵고 미지근한 빗방울이 철퍽철퍽 떨어졌다.

 

"육 여사가 총 맞았어!”

 

집에서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TV 흑백 화면의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는 검은 양복과 흰 한복들이 모였다 도로 흩어졌다 하기를 천천히 반복했다. 총소리는 생각보다 작고 둔했다.

 

나는 욕실로 가서 후들거리는 종아리에 물을 끼얹었다. 기적을 봤다는 얘기는 할 새도, 할 필요도 없었다. 그건 기적이 아니었다. 반드시 일어나야만 할 일이었다. 육영수 여사께서 저격당하셨는데, 괴한의 총탄을 맞아 고무신도 남겨놓고 실려 나가셨는데, 하늘이 가만있을 리가 있나? 어쩌지, 어쩌지.

 

오줌이 마려워 깬 새벽, 또 어느 구석에 간첩이 검은 그림자로 서 있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비밀 작전을 하다가 흠칫 멈추어, 내가 깼는지 안 깼는지 주시하고 있었다. 들켰다는 걸 알면 그는 총 개머리판으로 우리 식구의 머리통을 짓이기고, 두 검지를 우리 입속에 쑤셔 넣어 양쪽으로 찢을 것이다. 안 깬 척하려면 나는 위아래 속눈썹이 맞닿을락 말락 한 눈을 더 떠서는 안 되지만, 티 나게 꾹 감아서도 안 된다. 숨소리도 더 커지거나 작아지면 안 된다. 이불에 감긴 채로 꼼짝없이, 땀 밴 베개에서는 열기가 올라오고, 오줌보는 터질 듯, 터질 듯 한계를 넘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눈을 깜박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주 굉장히 낮겠으나 확률이 제로인 법은 없다. 바로 이 순간, 휴전선을 지키는 국군 아저씨들의 눈꺼풀이 한꺼번에 내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눈 깜짝할 새를 놓치지 않고 북괴는 쳐들어온다. 밤에 잠들려다 하필 이런 생각이 들면 나만이라도 깨어 있어야 했다. 이 순간, 치명적인 일치가 지나갈 때까지만, 그런데 국군 아저씨들의 눈꺼풀이 모조리 닫히는 순간이, 막 지나간 그 순간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이라면? 다시 이 순간, 또다시 이 순간······ 나만이라도, 나만이라도. 잠과 함께 죄책감이 덮쳐왔다. , 어쩌지.

 

북괴는 우리 국민의 속마음까지 투시할 수 있었다. 우리 중 단 한명이 속으로 잠깐 딴생각을 할지라도, 그 생각을 휴전선의 균열로 물질화시켜 밀고 들어올 능력이 있었다. 신에 버금가는 전지전능한 악이었다. 빨강 도깨비 정도가 아니었다. 수시로 터지는 간첩 사건의 연루자들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다른 인간들마저 망치려고 움직일 뿐인, 요즘 식으로는 좀비였다.

 

북괴만인가, 그 위의 중공, 더 위의 소련. 그들이 악의와 야욕으로 시시각각 부풀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어제 무너지지 않았고 오늘도 버텨낸다는 것이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1,000불의 1980년대같은 얘기를 들어봤자 국민학생으로서는 가늠도 안 되거니와, 생뚱맞았다. 지금 저런 소릴 해도 되나? 온몸으로 온힘으로, 막는 데만 열중해도 안 될 세계 민주주의의 최전선에서? 어머니가 전화 통화를 오래 할 때,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떡을 나눠줄 때, 예쁜 담임선생님이 결혼식 올린다고 결근할 때,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래도 되나? 내 어린 시절은 종말 직전이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는 건조한 가을이라서, 대기의 물방울에 햇빛이 반사되어 하늘이 변색되는 현상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 비할 바 아닌, 실로 기적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없는데도 수돗물이 나오고 버스가 다녔다.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평소보다 붐비는 대학 도서관 앞을 평소처럼 어슬렁거리지만 사지가 뻣뻣했다. 이런 때 이런 장소에서 마주치게 되는 얼굴들의 총출동, 입학할 때 기지 바지라든가 원피스 등 엄마(가 입혀준) 패션은 반년 만에 남녀 공히 청바지와 칙칙한 남방으로 통일되었다.

 

잔디밭을 뒤덮은 전경들을 거대한 국자가 휘저었다. 그들은 이지러진 방사형 도로를 새까맣게 메우며 밀려왔다. 가운데 공터의 인구 밀도는 점점 더 높아지는데, 반쯤은 벙거지 모자로부터 운동화까지 연베이지색 일색인 백골단들이었다. 곧 그들의 고공 무술이 시연될 터였다.

 

어수선하면서도 조용하고, 공기는 무거웠다. 누군가 가방이라도 떨어뜨렸는지 시멘트 바닥에 쇠붙이가 땡강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게 아니고 도서관 6층 창문 유리가 깨졌음을 알았을 때는 창을 막은 철망마저 우그러져 있고, 한 손에 빨간 나팔 스피커를 든 시위 주동 학생이 밧줄에 매달려 있었으며, 벌써 창문이 미어지게 경비원과 경찰들이 상체를 내밀고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밧줄에 매달린 주동자는 위로 끌어올려지다가 도로 쳐졌다. 좌우로 흔들리더니······ 사라졌다! 추락하여 며칠 뒤에 사망한 이는 황정하 열사다. 그날, 하늘로부터 땅으로 검은 셔터가 차르륵 내려와 탕 닫혔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일찍이 1980년 김의기 열사는 광주 학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투신했다. 그가 남긴 동포에게 드리는 글에는 같은 구절이 반복된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암흑 속에서 학과의 구분도, 성격, 기질, 취향 따위도 없었다.

 

우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어릴 적 생각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동기들은 투사로 성장하여 의문사, 고문사당하고 급기야 스스로 불꽃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내내 지리멸렬했다. 그러면서 자문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년쯤 뒤 오랜만의 회동, 제각기 브라운운동(brownian motion)처럼 불규칙, 예측 불가의 인생을 살아왔다. ‘참여정부에 참여하게 된 한 친구가 새만금 매립과 이라크 파병에 대해 변명했다.

 

국정을 맡겼으면 믿어줘야지!”

 

버버, 버버버버. 나를 비롯하여 반론은 빈약했다. 속으로는 수긍도 되니 어쩌랴. 비판과 통치는 다를 것이다. 정부더러 국운을 걸고 무모한 모험을 하나는 뜻은 아니었다. 국제 역학 관계라든가 일반 국민은 알지 못하고 알아서도 안 되는 사안도 있으리라. 이상만 고집하다 현실 정치에서 실패하기를, 누구도 바라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였다. 예나 제나 조국은 위기고, 우리가 해야만 할 일이 있다. 자칫하면 역사가 퇴보한다. 예전에 독재 정권을 밀어내야 했듯이, 지금은 민주 정부를 지켜야 한다. 믿고 힘을 몰아줘야 한다.

 

인간의 몫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폭력이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그래도 조국 폭력이라는 말은 없다. 조국은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할 리가 없는 신성한 우리나라고, 국가는 그럴 수도 있는 실제 체제를 뜻하는 모양이다.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쉰이 넘도록 나는 국가에 매달렸다. 매번 최악을 막기 위해 억지로 투표했고, 당락에 마음 졸였고, 다음을 기다렸다. 국가에 모든 문제를 맡기고 제대로 된 정권만 들어서면 해결해주리라 은연중에 믿었다. 이제 그만하련다.

 

국가는 오늘날 가장 방대하고 막강한 조직이며, 대부분의 인력을 생각도 감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경찰들이, 보름도 안 돼 유가족들을 저지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차단하고 있었다. 서울 광화문의 세월호 폭력 시위를 진압하려고 전국에 동원된 13,000여 명의 경찰 중에 그들도 포함됐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국가는 무정하다. 그런데 집권자들의 의지를 전 국민과 국토에 관철시킨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유정(有情)하며, 사적이다.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올지라도, 국민은 선거에서 당선시켜주는 역할을 할 뿐 국정에 참여하기가 불가능하다. 통째로 위임할 수만 있다. 빙산의 일각보다 작은 집권자들은 공공의 선같은 관념이 아니고 인간들이며, 이익을 공유한 자들이다. 이들이 빙산의 몸체를 기계처럼 부린다.

 

학살을 명령할 수 있다. 고문, 은폐를 지시할 수도 있다. 여론조작과 선동을 공무로 부과할 수도 있다, 안 하면 처벌할 수 있다. 국가는 이미 그런 적 있다. 더구나 참여정부 시절 주요 기구의 태업으로 드러났듯이, 국가는 유연해지기 어렵지만 경직되기는 쉽다.

 

어마어마한 로봇과도 같다. 물론 누가 조종하는가가 관건이다. 조종하는 사람에 따라 로봇은 춤을 출 수도, 때려 부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라도 조종을 맡기기 전에, 만약의 폐해를 최소화할 방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나. 기능이나 활동 범위에 제한을 둔다든지. 이러지 않는 한 상존하는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외적으로 국방이 중요하듯이, 내적으로 국민 방어도 중요하다.

 

선거 제도부터 시급히 바꿔야 한다. 몇 퍼센트의 표차로 이긴 쪽이 권력을 독점해서는 안 되고, 또 유권자가 사표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애걸하기도 지쳤다. 늦었겠지만 경제적·심리적으로 국가에 덜 의지하고도 살 수 있는 묘안을 찾아봐야겠다. 요즘 컴퓨터만 켜면 요양원으로부터 공동체 사이트까지 두서없이 뒤적이고 있다.

 

설령 친절하고 예의 바른 국가일지라도 국경을 넘으면 흔히 돌변한다. UN 평화유지군으로 외국에 간 군대가 학살을 저지르기도 한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 국가다. 국민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최강의 국가도 못하는 것을 인간은 할 수 있다. 인간의 몫이 있다.

 

다시 조국을 생각해본다. 말 그대로 신성한 조국이 이 땅에 실현 된 적은 없어도, 조국은 있는 것 같다. 국가가 폭주할 때 인간의 몫을 끌어안았던 이들의 기억이 내게는 있다. 그들은 그렇게 조국을 지켰다.

 

그날이 오면

 

두두두, 창밖에서 폭음이 울렸다. 한국인의 안색이 변했다, 팔레스타인인은 잠깐 귀 기울이더니 말했다.

 

결혼식이야.”

 

결혼식?”

 

우리도 결혼식을 한다고. 폭죽도 터뜨리고.”

 

지난번 한국인의 방문 때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때는 한밤에 이스라엘 탱크가 라말라(ramallah) 시내를 유유히 누볐다. 총성과 포성이 심심찮게 들리고, 골목 첫 집에서 테러리스트 용의자의 집까지 여러 채를 한꺼번에 고무 폭탄으로 시원하게 뚫어버리는 폭발음도 가끔씩 울렸다.

 

결혼식 맞아?”

 

두두, 두두두두. 축하 폭죽치고는 너무 오래가는 것도 같았다.

 

맞아, 결혼식. , 그들은 자기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고, 언젠가는 돌아올 거야. 여기가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거든. 우리는 항상 당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돼.”

 

하던 얘기가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무수한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철수했으나, 시설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고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점령지일 뿐이다.

 

알 것 같아, 우리도 식민지였으니까. 그다음에는 분단이지. 매사가 걸리고 꼬여. 이라크 파병도 그랬고.”

 

한국인은 씁쓸히 말했다.

 

알 것 같아, 우리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에는 억압을 완화하면서, 가자지구에 대해서는 계속 강화했다. 서로 불신이 깊어져 서안과 가자는 거의 단절되었다. 서안에서 우세한 파타(Fatah)' 당원들과 가자에서 우세한 하마스(Hamas)' 당원들 사이에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또한 서안 지구 안에서도 라말라와 해브론(Hebron) 사이에 이스라엘 점령촌이 급증하여, 양쪽이 점점 분리되고 있다.

 

저게 결혼식이라고?”

 

, 퍼펑, 창문의 유리까지 떨렸다. 팔레스타인인은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한참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창문을 닫으며 웅얼거렸다.

 

결혼식이야.”

 

팔레스타인의 저항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시인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나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내 나라가 해방될 때, 나 또한 해방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방을 보지 못하고 2008년에 작고했다.

 

오수연

 

1964년생. 1994현대문학등단. 장편소설 부엌, 돌의 말, 소설집 황금 지붕. 한국일보 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