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방탄소년단으로 보는 성장과 삶의 이야기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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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은 ‘폭포’에서 폭포의 물소리는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곧은 소리는 곧은/소리를 부른다"라고 썼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의 메시지는 곧은 소리가 아니라, 여기저기 마구 흩뿌려지는 분수물처럼 느껴진다. 자유롭기 이를 데 없다. 그 자유 속에서 이상하게도 '곧은 소리'와 조금 다른 '솔직한 소리'가 들린다. BTS의 '솔직한 소리'는 분명 다른데도 1960년대 김수영의 ‘곧은 소리’만치 힘을 준다.

BTS 홍보를 위해 탁월한 비즈니스 마케팅이 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갖고 있는 '솔직한 소리'에 세계가 반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솔직한 소리가 같은 세대 젊은이들에게는 곧은 소리보다 더 힘 있는 위로로 다가간 것이다.

BTS가 주는 담론은 너무도 다양하다. 2013년 6월에 데뷔하고 그 무렵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한 몇몇 초기 노래는 차갑게 비판받았다. <쩔어>(2015) 이후에 그들이 자유로운 의지로 만든 노래들, 가령 <FAKE LOVE>(2018)는 아이돌 노래의 문법에 충실하면서 아이돌스러움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 기쁜 척할 수가 있었어
널 위해서라면 난 아파도 강한 척할 수가 있었어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I'm so sick of this fake love, fake love, fake love
I'm so sorry but it's fake love, fake love, fake love

비슷한 거 같지만, 7명이 한몸처럼 겹쳤다 풀어지며 춤추는 첫 장면부터 낯선 파격을 보여준다. 춤 동작 하나에도 지금까지 나왔던 아이돌과는 철저하게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가사다.

"나도 내가 누구였는지도 잘 모르게 됐어/거울에다 지껄여봐 너는 대체 누구니"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물음은 BTS의 많은 노래에서 반복된다. 과연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를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며 솔직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며 성장한다. BTS 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각성'과 '성장'이다.

BTS와 문학

BTS 노래 가사에는 수많은 인문학 고전의 구절이 등장한다. 니체, 칼 구스타프 융,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헤르만 헤세 등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다양한 명구가 등장한다. 특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중요한 창작 계기를 주었다.

『데미안』 그리고 성장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잠깐 손원평 소설 『아몬드』를 생각해보자. 첫 문장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독자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먼저 엄마와 할멈, 다음으로는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그 후에는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섰던 50대 아저씨 등과 경찰 한 명이었다. 그리고 끝으로는 그 남자 자신이었다. 그는 정신없는 칼부림의 마지막 대상으로 스스로를 선택했다. 자신을 찔러 넣은 남자는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숨이 끊어졌다. 나는 모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 손원평, 아몬드 2017.

이후 이 충격적 사건 이후에 주인공 '나'가 어떻게 변화되는지가 소설의 줄거리다. 칼에 찔려 죽는 외할머니는 항상 딸인 '나'의 엄마를 “썩을 년”이라고 부른다. 손자 윤재를 “귀여운 괴물”이라고 부르며 사랑한다. 엄마와 할머니와 온 세 가족은 크리스마스이브 겸 윤재의 16번째 생일날 냉면을 먹으러 간다. 그날 눈이 내려 즐겁게 식당 앞으로 나갔다가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이 바로 첫 문장 앞 장면에 나오는 사건이다. 할머니는 한 사내의 칼부림에 살해당한다.

끔찍하게 시작하는 이 소설은 4부로 나뉘어 있다. 과연 이 첫 장면이 어떻게 벌어진 연고인지는 1부 끝에 나온다.

'나 선윤재의 둘레에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몇 명의 중요 인물이 있다. 지은은 주인공 선재의 엄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연을 끊으면서까지 결혼을 감행하지만, 아이를 임신한 채 남편과 사별하고, 장애가 있는 윤재를 낳는다. 다른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엄마는 애썼지만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 7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지냈던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먼저 주인공 ‘나’, 선윤재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라는 희귀한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쉽게 말해 희로애락을 못 느끼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다. 귀 뒤쪽에,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아몬드 같은 형체를 '아미그달라' 혹은 '편도체'라고 부른다. '나'에게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너무 작아 어떤 감정도 분노도 공포도 잘 느끼지 못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아몬드'라는 이쁜 책 제목이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온다.

2부에서는 윤재를 진심으로 신경 써주는 첫 어른 심 박사가 등장한다. 책방 2층에 있는 ‘심재명 제과점’의 사장이며 건물주인 그를 엄마는 ‘심 박사’라고 불렀다. 그는 사실 과거에 심장내과 의사였다. 심장 정지로 죽어가는 아내를 살리지 못한 그는 의사를 그만두고 빵을 만든다. 엄마와 할머니가 떠난 후 심 박사의 도움을 받는 윤재는 행방불명되었다가 소년원에서 형을 살고 나온 곤이를 만나고 폭행당한다.

3부는 "도라는 곤이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아이였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육상선수 도라로 인해 윤재는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을 처음 경험한다. 도라는 윤재에게 '사랑' 잉걸불을 일으킨다. 이라는

4부에서는 깡패 철사의 칼부림 사건이 터지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절정에 오른다.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을 경험한 윤재는 곤이를 진심으로 아낀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까스로 살아난 윤재에게 식물인간이었던 엄마가 휠체어를 타고 다가오는 헤피엔드로 마무리된다. 다 읽고 표지를 보면, 인물 주변에 밝은 연녹색이 희망으로 설핏 보인다.

이 소설은 많은 고전과 비견할 만하다. 또한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싱클레어가 등장하는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을 떠올리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아몬드에서 데미안이 살짝 등장한다.

그는 책을 내밀며 가격을 물었다.
- 백만 원요
- 생각보다 비싸구나.
남자가 책을 앞뒤로 뒤적였다.
-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니? 초판본도 아닌데, 어차피 번역서여서 초판본이라도 해도 별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책의 제목은 '데미안이었다.
- 어쨌든 백만 원이에요
그건 엄마의 책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엄마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한 책 팔지 않을 책이었다.

- 손원평, 『아몬드』, 84~85쪽

곤이의 아빠 윤권호 교수가 처음 윤재에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윤재와 곤이가 만나는 계기가 되는 장면에서 작가는 『데미안』을 살짝 언급한다. 이제부터 두 소년이 성장통을 겪는 복선을 살짝 제시한 셈이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영혼의 멘토인 데미안을 만나 각성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데미안과 함께 이 소설은 『완득이』 『두근두근 내 인생』과 비교할 만한 성장소설이다. 타자의 슬픔이나 죽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윤재는 카뮈의 『이방인』에서 엄마의 죽음에도 별 감정을 못 느끼는 주인공 뫼르소와 비교된다.

『아몬드』는 2020년 한국 소설 중 독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책이다. 세계 12개국 13개 언어로 번역된 K-문학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많이 팔리기 때문에 주목되는 소설이 아니다. 특이한 장애를 가진 '나'의 입장은 현대인이 누구라도 가질 수 증상이다. 그 잠재적 증상을 체험하면서, 인간을 이해하는 넓은 지평을 가지게 하는 충분한 덕성을 갖춘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인용된 데미안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히는 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아몬드』에 『데미안』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도 세계인들은 반가워할 것이다.

선/악의 세계, 싱클레어 =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책을 간단히 소개하는 책머리에 해당하는 제사(題詞)가 있다. 여기에는 작가 자신이 살짝 등장한다. 소설 본문과 다른 프롤로그 같은 서언의 첫 문장이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훨씬 앞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이전으로 내 유년의 맨 처음까지, 또 아득한 나의 근원까지 올라가야 하리라.
Um meine Geschichte zu erzählen, muß ich weit vorn anfangen. Ich müßte, wäre es mir möglich, noch viel weiter zurückgehen, bis in die allerersten Jahre meiner Kindheit und noch über sie hinaus in die Ferne meiner Herkunft zurück,

작가는 “내 유년의 맨 처음까지, 또 아득한 나의 근원까지 올라가”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한다. 이 소설을 많은 독자들은 고등학교 때 아니면 20대 초반에 읽었을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생 때 읽고 대학생 때 대충 읽고, 헤세가 이 소설을 썼다는 40대 중반을 넘겨 다시 읽었다. 서언이 끝나고 소설의 첫 문장이라 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온다.

내가 열 살이고 작은 도시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체험 하나로 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 시절부터 짙은 향기가 밀려와 속에서부터 아픔과 기분 좋은 전로 마음을 뒤흔든다. 어두운 골목들과 환한 집들, 탑들, 시계 치는 소리와 사람들 얼굴, 편안함과 따뜻한 쾌적함으로 가득 찬 방들 따뜻하고 비좁은 방의 냄새, 토끼와 하녀들의 냄새, 가정 처방약 냄새와 마른 과일 향기가난다. 그곳에서는 두 세계가 뒤섞였다. 밤과 낮이 두 극(極)으로부터 나왔다.

여기서 주인공은 안락하고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열 살 소년 '싱클레어'다. 첫 장면부터 뒤섞인 두 세계가 제시된다. “밤과 낮이 두 극(極)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에서 태어나 자란다. 그와 대비되는 ‘어두운 세계’에서 자란 아이 '프란츠 크로머'는 싱클레어가 거짓말했다는 약점을 잡아 협박하기 시작한다.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고 1919년에 출판된다. 부제가 '에밀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다. 소년이었던 주인공 싱클레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얻는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싱클레어는 누구일까. 싱클레어는 헤르만 헤세 자신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는 주인공이다. 『데미안』을 탈고했을 때 헤세는 40대 중반이었다. 이미 6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페터 카멘친트』의 작가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었다. 그는 이 책을 헤세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였기에 작품만으로 승부해보고 싶어 필명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는 설도 있다. 이미 반전 작가로 전쟁을 일으키는 독일에 반대하는 헤세에게 여러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더 정확할 것이다. 『데미안』의 저자가 헤르만 헤세라는 사실을 직감한 사람은 그의 우울증을 치료하고 있던 칼 구스타프 융이었다. 중요한 것은 『데미안』에는 저자 헤세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가 많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헤르만 헤세의 모든 소설은 깨달음, 곧 각성(覺醒)을 주제로 한다. 헤세는 1943년 그의 나이 66세 때 마지막 작품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를 발표한다. 그의 삶 전체를 주관한 깨달음의 모든 것을 정리한 이 소설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이 소설에는 가상의 정신 공동체, 기독교와 니체 사상, 동양사상과 『주역』, 인도 사상과 불교 등 헤르만 헤세가 거쳤던 모든 깨달음의 과정을 정리해놓았다.

헤세가 깨닫는 과정의 초기작에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이 있다. 이 세계적인 고전을 BTS는 놀랍게도 노래와 영상으로 만들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데미안』을 모티프로 하여 BTS가 만든 뮤직비디오는 문학과 대중음악의 흔치 않은 결합이다.

데미안과 BTS의 성찰

『데미안』을 모티프로 BTS가 표현한 정규 2집 <윙스(WINGS)>는 세계 젊은이에게 큰 자극을 주고 있다. 유튜브에서 'BTS Wings Full Story'라고 검색하면 35분 57초의 전체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영상을 꼭 함께 보셨으면 한다. 영상을 보지 않고서는 이 글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쇼트필름 7개의 영상 앞부분에는 RM 의 내레이션으로 『데미안』의 소설 구절이 흐른다. 『데미안』뿐만 아니라, <윙스>에는 클래식 명화, 니체의 명구, 쇼팽과 드뷔시 등 클래식 명곡들이 섞여 나온다. 한 장면 한 장면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와 비밀이 숨겨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BTS 영상을 보면서 다양한 인문학을 배우고, 진정한 성장과 각성을 깨닫는 것이다.

먼저 ‘1. 인트로 : 소년이 악을 만나다’를 보자. 도입부에서 앞서 인용했던 『데미안』의 한 구절이 낭송된다. 영어로 낭송하기에 영문을 먼저 쓴다.

The realms of day and night, two different worlds coming from two opposite poles, mingled during this time. (그곳에서는 두 세계가 뒤섞였다. 밤과 낮이 두 극으로부터 나왔다.)

『데미안』 앞부분에는 '고귀함/천박함', '문명/야만', '부자/빈자' 등 이항대립이 명확히 밝음과 어둠의 대립으로 나와 있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그 세계는 협소해서 사실 그 안에는 내 부모님밖에 없었다. 그 세계는 나도 대부분 잘 알고 있었다. 그 세계의 이름은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그 세계의 이름은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였다. 그 세계에 속하는 것은 온화한 광채 맑음과 깨끗함이었다. 그것에는 부드럽고 다정한 이야기들, 깨끗이 닦은 손, 청결한 옷, 좋은 관습이 깃들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침에 찬송가가 불려졌다. 그곳에는 성탄절 잔치가 있었다. 곧바로 미래로 이어지는 곧은 선과 길이 그 세계 속에 있었다. 의무와 책임, 양심의 가책과 고해, 용서와 선한 원칙들, 사랑과 존경, 성경 말씀과 지혜가 있었다. 인생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정돈되어 있으려면 그 세계를 향해 있어야만 했다.
반면 또 하나의 세계가 이미 우리 집 한가운데에서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냄새도 달랐고, 말도 달랐고, 약속하고 요구하는 것도 달랐다. 그 두 번째 세계 속에는 하녀들과 직공들이 있고 유령 이야기들과 스캔들이 있었다. 무시무시하고 유혹하는 무섭고 수수께끼 같은 물건들. 도살장과 감옥, 술 취한 사람들과 악쓰는 여자들, 새끼 낳는 암소와 쓰러진 말들, 강도의 침입, 거칠고도 잔인한 그 모든 일들이 사방에, 바로 옆 골목, 바로 옆집에서 있었고, 경찰 끄나풀들과 부랑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정뱅이들은 아내를 왜고, 저녁 때면 젊은 여자들의 무리가 뒤엉켜 공장에서 꾸역꾸역 나왔다. 늙은 여자들은 누군가에게 요술을 걸거나 병이 나도록 할 수 있었다. 숲에는 도둑떼가 살고 있었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 10-12폭(이후로 인용문의 폭수만 표기한다)

이 이항대립이 신기한 것은 선과 악의 세계가 동시에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기이했던 것은 그 경계가 서로 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는 이 문장을 BTS는 영상에서 밝음과 어둠이 마구 섞여 있거나, 밝은 집의 세계와 어둡고 도둑떼가 살고 있는 숲의 세계가 마구 뒤섞이는 무의식의 세계로 그려낸다.

이어 휘파람 소리가 난다. 『데미안』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 휘파람 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릴 것이다. 소설에서 악의 편으로 등장하는 프란츠 크로머가 돈을 뜯어내려고 싱클레어를 집에서 불러낼 때 늘 휘파람을 불었기 때문이다.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전에도 자주 듣던 소리였다.
지금이라도 문득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다시 들린다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후로 나는 그 소리를 자주 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 어떤 장소나 놀이, 그 어떤 일이나 생각이라도 그 휘파람 소리가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없었고, 그 소리는 그때부터 나를 종속시켜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 『데미안』 30-31쪽

『데미안』을 읽고 나면 저 휘파람 소리가 얼마나 거부감을 주는지, 일상에서 다시 들으면 정겹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휘파람이라는 유혹의 소리는 이제 안온한 유년기가 끝나고 세상 입문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혹시 내 인생도 악으로 끌어내려는 휘파람 같은 것이 있었을까. 휘파람이 들려올 때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성찰할 수 있다.

이어 한 소년(정국)이 어둠과 흰색으로 대비되는 화면에서 침대에서 악몽을 꾸다가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로 인해 악몽을 꿔 괴로워하는 장면이다. 이어 주인공은 비 내리는 날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다. 자기 일생을 어떻게 그려나갈까 고심하는 시기를 상징한다.

이어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간다. 『데미안』에서 핵심이 되는 아브락사스 새를 상징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는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영지주의 종파 중 하나다. 기독교에서 악마로 여기는 아브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저도 공존하는 이 세상의 두 가지 세계를 모두 인정하는 최고의 신이다. 선과 악,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데미안의 꿈에서 나온 어떤 여자 닮은 형상은 데미안에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 ‘나’는 아브락사스가 그려진 초대장을 받는다. 관객 또한 그 초대장을 받고 하나의 이야기에 초대된다. ‘나’의 그림자는 아브락사스로 펼쳐진다(2분 19초). 여기까지가 프롤로그다.

이어서 <쇼트 필름 #2 LIE>가 펼쳐진다. 2장의 제목은 ‘거짓말’이다. 프란츠 크로머에게 더 이상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싱클레어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My parents’ house made up on one realm. This realm was familiar to me in almost every way-mother and father, love and strictness, model behavior, and school. (하나의 세계는 부모님의 집이었다. 나는 이 세계 대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세계는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불렸다. 또한 사랑과 엄격, 모범과 학교라고 불렸다.)

다른 장면에서 ‘나’(지민)는 사방이 온통 흰 세계에 살고 있고, 카메라를 의식하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목을 조이며 “이 거짓 속에 헤어날 수 없어. 웃음을 돌려줘. 이 지옥에서 날 꺼내줘.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어”라며 괴로워한다.

사과는 선악과를 상징한다. 액자, 혹은 창밖으로 보이는 음산한 숲 풍경은 ‘금지된 세계’로 그들을 유혹하고 결국 사과(선악과)를 베어 문 지민은 숲속, 금지된 세계로 나아간다.

<쇼트 필름 #3>은 ‘뷔’가 잡혀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뷔는 영화 <화양연화>와 <윙스> 앨범에서 부친 살해 요소로 등장한다.

이어 BTS 멤버들은 모두 즐겁게 짝을 지어 미술관에 들어간다. 미술관은 모든 전통과 자유와 정보가 공유되는 공간이다. 미술관에서 모두 즐거운데 단 한 명만 친구가 없다. BTS ㅁㅔㅁ버 중 ‘진’이 홀로 바흐의 <b단조 미사>가 흐르는 미술관에서 한 그림을 뚫어지게 본다.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 1525?~1569)이 그린 <반역 천사의 추락>(1562)를 본다. 이 그림의 윗부분에는 우아하고 밝은 옷을 입은 선한 천사들이 창을 들고 있다. 선한 천사들은 배반한 천사들, 마치 벌레처럼 보이는 반역 천사들을 창으로 찌르며 지하로 추락시키고 있다.

'진'은 <반역 천사의 추락>을 보면서 자신도 악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이 영상에 악성이 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데미안은 데몬(사탄)을 줄인 말이라는 황당한 말도 한다. 데미안은 '다에몬(daemon)'을 줄인 말로, 수호신을 뜻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다에몬은 극의 주인공을 이끌어주는 길잡이 반신반인의 존재이지, 악마가 아니다. 수호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이 소설의 핵심은 세상의 좋은 면뿐만 아니라 나쁜 면을 보면서도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데미안에서 악은 나쁜 것이 아니다. 악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각성이 일어난다. 그림 속의 '타락한 천사'는 자아를 찾는 데 필요한 매개체다.

그네를 타고 있는 '정국'은 한 손에 사탕을 쥐고 있다. 그네와 사탕은 어린아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정국도 선의 편에 서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네에 매달린 정국의 뒤에 걸려있는 그림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이카루스를 위한 탄식 (The Lament for Icarus)>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하늘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다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 떨어진다. 이는 신화 속에서 ‘신에 대한 대항’으로 여겨진다. 괴테의 『파우스트』 2권에서 이카루스는 파우스트의 아들로 등장한다.

정국은 마치 하늘에서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그네에 축 늘어져 흔들린다. 무척 위험스럽게 보이지만, 그것도 성장을 위한 통과제의의 과정으로 등장한다. 추락(Fall)은 성숙(muturity)을 위한 과정이다. 수없는 추락을 거쳐 기투할 수 있는 것이다.

발코니에 앉아 있는 뷔는 아직 추락하지 않았으니 '선의 존재'에 가깝다. 가장 많은 손으로 가려진 '진'은 가장 늦게 악을 깨닫는다. 제이홉이 깃털 달린 화살을 쏜다. 이 화살은 뷔에게 날아간다. 5분 21초 뷔는 등에 상처난 채로 앉아 있다. 마치 날개가 부러진 듯한 모습이다.

초록 연기를 피우고 초록색 밀랍을 만드는 RM은 악의 편이다. 정국이 초록색 술인 압생트를 마시는 장면도 나온다. 초록색 연기를 피우기도 한다(29분) 압생트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먹던 술이다. 환각 작용을 일으켜 창작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반 고흐 등 예술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압생트'와 '새', 그리고 ‘사탕’은 악과 유혹을 맛본다는 뜻이다. 정국은 더 이상 그네를 타지 않고 악의 편인 RM과 함께 있다.

제이홉은 뷔의 등에 상처를 선물한 존재다. 이는 악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한다는 뜻이다. <피 땀 눈물> 중 '아파도 돼"라는 가사와 연결된다. 아파야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뷔의 등에 난 (첫)상처는 날개가 돈을 자리겠다. 날개가 돋는다는 건, 자아를 각성한다는 뜻이다. 소설 『데미안』 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었다.

아버지의 신성함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내 유년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이어 미술관에서 춤을 추는 장면(27분)이 나온다. 춤추는 BTS 뒤에는 메두사의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왼쪽)와 데메테르(오른쪽) 석상이 있다. 파괴자라는 어원을 지닌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을 벤 영웅이다. 괴물을 퇴치하는 페르세우스는 성장을 의미한다.

대지의 어머니인 데메테르는 풍요와 어머니의 품을 상징한다.

페르세우스와 데메테르 사이에는 소년들이 춤을 춘다. 몸부림치며 소년들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층집이 나온다(29분). 아래층에서 계속 시험을 상징하는 푸른색 연기가 올라오고 그 위층에서는 시험을 상징하는 사과를 원하는 아이, 그리고 그 사과를 외면하려고 눈을 가리는 아이가 나온다.

제이홉이 쏜 악의 화살을 맞고, 추락하지 않고 베란다 난간에 앉아 있던 뷔는 추락한다(29분 26초), 뷔는 그림 <이카로스의 추락> 위에 떨어진다.

슈가가 오르간에 앉아 연주를 한다(31분), 『데미안』에는 피스토리우스가 등장한다.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싱클레어의 친구다.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으로, 싱클레어를 성장시키는 주요 인물이다. 슈가의 오르간 연주는 이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다. 자아의 각성 과정을 상징적 연주로 풀었다.

'선'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피에타가 나온다. 선한 피에타상 앞에서 칼과 화살을 쏠 수 있는 제이홉은 악의 존재다. 춤을 추던 제이홉 뒤에서 피에타상이 깨진다.

뷔의 등에서 상처가 나고 날개가 나기 시작한다. 뷔는 날개가 찢겨진 이카루스였다. 슈가의 방에 사과선악과를 든 지민이 찾아온다. 슈가는 앞서 초록색 연기로 악의 연기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악을 보지 말라고 안대로 눈을 가려주지만 그 안대는 묶여 있다. 단 한 사람 '진만을 제외하고 이제 모두 악으로 물들어버렸다.

거울을 바라보던 진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피 땀 눈물> 가사 속 "나를 부드럽게 죽여줘"라는 부분이 있다. 스스로 자신을 죽여가면서 성장하는 성장통을 보여준다. 피에타상과 진의 얼굴에 금이 간 것 역시 알을 깨는 고통을 상징한다.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날아오르는 각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주인공 싱클레어는 수호자를 마주한다(31분 26초), 데미안은 “눈을 감으라” 하고, 싱클레어는 피가 흐르는 입에 가벼운 키스를 느낀다. 사실 <윙스>에서 데미안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데미안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 싱클레어의 내면에 있는 분신이라는 분석처럼, 영상 <윙스>에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내면으로 재현될 뿐이다.

이후 진은 거울을 마주한다(31분 53초), 그 거울 위에는 니체의 명구가 써 있다. 니체는 성장하려면 반드시 혼돈을 겪어야 한다고 썼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Man muß noch Chaos in sich haben, um einen tanzenden Stern gebären zu können.)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진’이 바라보는 이 한 글귀가 이 프로젝트의 결론이다. 타락과 추락을 거치며, 인간은 내면의 혼돈을 거쳐 '춤추는 별'을 잉태한다. 이 문장이 나오는 본문은 다음과 같다.

“나 저들에게 더없이 경멸스러운 것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인간말종이 바로 그것이다.”
이어서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 자신의 목표를 세울 때가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최고 희망의 싹을 틔울 때다.
토양은 아직도 그러기에 모자람이 없을 만큼 비옥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도 척박해져 지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큰 나무도 이 땅에서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슬픈 일이다! 사람이 더 이상 그 자신 위로 동경의 화살을 쏘지 못하고 자신의 활시위를 울릴 줄도 모르는 그런 때가 오고 말 것이니!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키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너희는 아직 그러한 혼돈을 지니고 있다.
슬픈 일이다! 사람이 더 이상 별을 탄생시킬 수 없게 될 때가 올 것이니 슬픈 일이다!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그리하여 경멸스럽게 짝이 없는 사람의 시대가 올 것이니.
보라! 나 너희에게 인간말종을 보여주겠으니
'사랑이 무엇이지? 창조가 무엇이지? 동경이 무엇이지? 별은 무엇이고? 인간말종은 이렇게 묻고는 눈을 깜빡인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 5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10, 24쪽

차라투스트라가 위버멘쉬를 이해 못 하는 인간말종(der letzte Mensch)들에게 위버멘쉬는 '혼돈을 갖고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춤추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차라투스트라에서 인간말종은 당장의 작은 쾌락에 안주하는 군중들이다. 인간말종들은 평등하게 존중받기를 바라면서 어떤 발전이나 수용을 거부한다. 그들은 사랑이, 창조가, 동경이, 별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 못 한다.

반면 위버멘쉬는 내면의 혼돈과 악, 유혹 속에서 자신을 정진시켜 성장시킨다. BTS의 <윙스>에서는 그 혼돈과 성장과 자각을 '피 땀 눈물'로 상징했다.

니체의 글을 본 진은 검은색 날개를 단 악마의 형상을 한 동상과 입을 맞춘다. 석진은 어린 싱클레어고, 동상은 데미안일까. 반역 천사로 보는 것이

 

더 가깝지 않을까.

진은 그림 속 반역 천사에 나오는 반역 천사의 동상을 마주한다. 진은 그 동상에 입맞춤하고 악을 마주한다. 입맞춤은 자신 내면에 있는 악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이다. 인간은 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모르고 지은 죄'(Hamartia)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이는 선과 악의 세계가 통합됨을 의미한다. 나는 선, 눈을 가린 건 악, 키스는 둘의 통합을 말한다.

석진의 얼굴에 금이 가며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껍데기를 깨고 새롭게 태어나는 외톨이 개인을 상징한다. 자신이 깨지는 혼돈(Chaos)을 겪으며 주인공은 이제 성장한 단독자로서 존재한다.

이제 단독자로서 세상에 나서는 싱클레어들 앞에는 기차역이 펼쳐지고 바다가 펼쳐지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데미안을 인유하여 만든 뮤직비디오 윙스(WINGS)>는 BTS 멤버들이 악을 깨달으면서 성장하는 스토리를 담은 탁월한 영상이다.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 세 권의 윤동주 이야기 『처럼 - 시로 만나는 윤동주』 『나무가 있다 - 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서른세 번의 만남-백석과 동주』가 있고, 영화 평론집 『시네마 에피파니』 외에 『김수영, 시로 만나는 윤동주』 등을 냈음.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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