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은 칼럼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독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여가의 방식으로 책과 오티티 한 달 구독료를 비교하면 책의 가성비가 현저히 떨어진다. 책 한 권이 넷플릭스 한 달치, 그것도 네 명 몫의 즐거움과 의미를 줘야만 한다. 결국 출판사 입장에서도 제작 비용이 비슷하면 여러 명의 중견 작가들에게 동시대적 소재를 주어 엮은 가벼운 앤솔로지를 내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분명히 가성비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이 책뿐 아니라 모든 문학은 그 가치를 말한다. 읽는 데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지 않지만 감동과 재미는 극대화하는 책 한권을 사기 위해 적립금과 쿠폰을 꼼꼼히 살피는 알뜰한 독자가 된 나는 슬프게도 알아버렸다. 가성비를 따질수록 문학은 점점 가성비를 맞출수 없다는 것을1)

작가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이후로 문학은 다양한 매체와 경쟁하면서 자신의 "가성비"를 증명해야 한다. 많은 독자는 “즐거움과 의미”를 지불하는 비용만큼 얻지 못하면 작품을 사기 위해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지 않지만 감동과 재미는 극대화하는” 길을 제시하는 게 하나의 길이다. 두 번째는 19세기 이래 심화된 대중성과 예술성의 해묵은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고 어차피 “문학은 점점 가성비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정신의 귀족주의’를 지키면서 당면한 문제를 문학만의 방식으로 다루는 길이다. 물론 그 길은 고독하며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다. 여러 상황의 변화는 작가에게 시장 논리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정신의 귀족주의를 지킬 것인가를 강요한다. 해묵은 쟁점이지만 이 시대는 더욱 첨예해졌다.

구독하는 영화 잡지에서 웹소설의 부상을 다룬 기획을 읽었다. 나같이 전통적인 레거시 문학2)을 연구하고 글을 쓰는 평론가에게는 낯선 충격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소설 시장 규모 자료를 보면 2014년 2백억 원대 규모였던 웹소설 시장은 2018년 4천억 원대에 이르렀고 2020년에 6천억 원 규모로 커졌다.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은 매출 3백억 원을 돌파했다.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출간 5일 만에 8,700세트가 팔렸다. 8권짜리 한 세트의 가격은 12만 8,000원이다. 파트2와 3이 올해 출간 예정으로 수십억 수익을 기대한다고 한다. 웹소설은 철저히 시장 논리와 대중의 기대를 염두에 두고 창작된다. 재미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끝까지 펼쳐보는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웹소설은 웹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연재된다. 웹소설 중 남성 독자가 선호하는 대표적인 장르로 꼽히는 무협 판타지의 경우 기존 대여점을 중심으로 한 장르물 시장이 웹으로 이동한 것이다. 여성 독자가 좋아하는 장르인 로맨스, BL, GL 등은 그런 장르물을 선호하는 동인 계열에서 주로 읽히다가 웹소설 시장으로 확장된 사례다3)

무엇보다 웹소설 시장이 6천억 대라는 것이 놀랍다. 레거시 문학장 박에서 거대한 독서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내가 알기로 소위 본격분한 후은 문단 문학 작가의 경우 초판 1만부 이상을 판매하는 작가가 많지 않다. 문단 문학 작품이 수십만 부씩 팔리는 시대는 지나갔다 들은 얘기지만 작가 지망생이 가장 선호하는 진로는 상업성과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방송 작가, 시나리오 작가라고 한다. 이제 거기에 원소설이 추가된 모양새다. 레거시 문학을 지망하는 작가의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따지고 보면 문학사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의 거리는 19세기 문학부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웹문학의 부상이 아주 특별한 사례는 아니다. 달라진 매체환경의 소산이다. 요는 예전 대중문학 장르가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 모습을 바꾼 문학이 더욱 넓게 유통된다는 것이다. 웹소설은 판타지나 로맨스, 미스터리 등 익숙한 플롯과 서사가 대부분이다.

웹소설의 인기를 두고 레거시 문학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웹소설이 보여주는 천편일적인 스토리 전개와 플롯 구성을 지금까지처럼 대중문화의 한계라고 지적하기는 쉽다 어려운 점은 독자층이 점점 더 웹문학에 맞춰 취향이 길들여질 때 레거시 문학은 어떤 행보를 취할 것인가라는 지점이다. 나는 레거시 소설이 장르 소설의 형식과 기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스토리텔링의 방식과 밀도를 높일 팔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한국소설에서도 김영하, 김연수 등이 추리 소설의 틀에 기댄 작품을 썼다, 최근에는 여러 젊은 작가들이 SF의 틀에서 레거시 소설의 오랜 주제인 인간다움과 인간관계의 양상을 새롭게 천착하는 작꿈을 발표하고 있다4)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레거시 문학이 웹소설 같은 새로운 대중문학의 인기와 상관없이 이 시대에 문학에게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의연하게 감당하느냐는 문제다. 나는 앞으로 레거시 문학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거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진단에 여전히 공감한다.

우리는 현재 세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에 직면해있다. 전쟁, 환경문제, 세계적인 경제적 격차 이것들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역사적 관계를 집약하는 사항들이다. 게다가 이것들은 시급한 과제들이다. 이전의 문학은 이런 과제들을 상상력으로 떠맡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학이 이것을 떠맡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불만을 드러낼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것을 떠맡고 싶다. 그것이 문학적이든 비문학적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5)

웹소설을 비롯한 대중문학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역사적 관계를 집약하는 "전쟁, 환경문제, 세계적인 경제적 격차" 등의 문제를 떠맡지 않는다. 무겁고 부담스러운 쟁점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모든 훌륭한 문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문명사적 쟁점을 다뤄왔다. 인류와 문명에 대한 넓은 시야를 잃지 않았다. 최근에 읽은 나희덕 시집 가능주의자와 이문재 시집 “혼자의 넓이”는 그런 시야가 지닌 힘을 보여준다. 앞으로 레거시 문학이 아무리 궁지에 몰릴지라도 정신의 귀족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시간의 흐름을 견디고 살아남는 건 이런 문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