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디아스포라", 어떤 대화

김선경
기사 듣기

디아스포라Mo 베개 편집자의 대화

 

2022년 5월 16일 3시 14분

안녕하세요?

올려주시는 다양한 포스팅을 오래동안 잘 보아오고 있었습니다. 이 기회에 감사드려요.

평소에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스토리에 올리시는 (대부분 트위터 트윗들인) 시사적인 내용들과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는 다양한 내용들 - 그 정도를 모아 보여주려면 (큐레이션이라 하겠어요!) 날마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걸 어떻게 그토록 꾸준히 하시는지, 또 왜 하시는지,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어떤 느낌인가 하면, 디아스포라 님께서는 사람들이 잘 상상하지 못할 어떤 동기를 갖고서 저 일을 하고 계신 것 같다는 좋은 뜻으로 ‘낯선’ 느낌이 들 때가 여러 번 있었거든요.

스토리에 올리시는 이미지나 영상은 아카이브가 아니잖아요. 일정 시간이지나면 사라지는 것인데, 그러니 포트폴리오로 쓸 것도 아니고, 트위터처럼 즉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리플을 받아 생각을 보충하거나 정서적 반응을 얻어 만족감을 누리기에도 효과적인 형식은 아닐 듯하고요,

저널적인 - 즉, 나날의 - 뉴스나 이에 대한 SNS 이용자의 짧은 해석문을 캡쳐해 올렸다가 해변 모래밭의 글자처럼 사라지게 놔두는 것과 같다면, 기억되길좀 더 커다란 조망의 지적 결정(結晶)이라 보기도 어려울 듯하고요. 그럼에도 읽는 사람 입장에선 분명 '우리'의 현실에 대한 각성과 더불어 어떤 감정선의 맥락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다시 말해 큐레이팅 된 내용처럼 보인다는 말이지요.

요약하면, 어떤 현실적인 보상이 있는지 잘 상상이 안되는데 덧없이 수고로워 보이는 그런 일을 하고 계시는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좀 느닷없고 엉뚱하지만 그렇게 수고롭고 덧없어 보이는 일을 왜 하시는지 여쭤본 거예요. 현실성이나 비전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현재 상태로 보면 어떤 '과잉', '넘쳐남'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이계세요. 달리 표현하면 어떤 지향이랄까, 이유를 갖고 불확실성을 안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그간에 베개에서는 <주체들>이라는 섹션에 모셔오곤 했습니다. 처음엔 주로 독립문예와 출판의 씬(scene)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분들이셨는데, 베개, 7호부터는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마음을 끄는 분들을 모시려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나 원고형식으로 <베개>에 모시면 좋을 것 같다는 즉흥적인 착상으로 메시지를 드립니다 답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22년 5월 18일

디아스포라 님, 안녕하세요?

<베개>에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로 응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틀 전(5월 16일) 오후에 제가 다소 충동적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말을 건 뒤 후회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응답을 받게 될지 모르겠다는 어정쩡한 기분으로 기다렸습니다. 답신을 보내주시기 전, 이른 새벽에, 저는 정중하게 대화를 거절당하는 꿈을 꾸고 나서 잠시 멍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흡족해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아, 역시 그랬던 거야, 라는 느낌이었어요. 상대방이 자신을 알려주기를 거절한다는 전개가 제가 상상한 바와 일치한다는 만족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실 수 있다는 답신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편이 당연히 더 기쁘니까요.

 

저의 질문과 답변을 엮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 - 멀리 있는 서술자

무엇보다도 제가 알고 싶은 것은 diaspora.s.letter_blanc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이자, 제 식의 명명으로는 '한 서술 주체의 세계'에 관한 어떤 것들이에요. 계정명이 주는 인상도 강한 편이어서 디아스포라 라고 하면 집과 고국을 떠나, 중심을 벗어나 흩어져 떠도는 어떤 외로운 상태의 주체를 떠올리게 됩니다.

"디아스포라"라는 서술자는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고 그 무엇도 아니려는 주체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디아스포라’는 온갖 세상일에 관해 전달하고 있지요.

그런 주체인 ‘디아스포라’의 편지 혹은 문자/언어인데, 그 편지는 하얀 백색, 무효한 것입니다. 프랑스어 blanc이 영어에선 white겠지만, 저는 철자가 유사한 blank를 먼저 떠올렸어요. 수많은 이미지를 전송하지만 중심은 ‘텅 비어 있다’라고 상상하면, 그런 서술의식을 유지하는 주체는 정말 흥미롭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디아스포라 님의 답변

돌아보니 diaspora's letter 라는 명칭을 꽤 오래전부터 사용했어요 라이코스 프리챌 등 새로운 인터넷 매체가 하나둘 등장하던 시기에 멜진이나 인포메일 등을 통해 영화평을 써서 메일로 보내는 이메일 잡지를 발간한 시기가 있었죠 그 시기에 사용했던 잡지 제목입니다. 당시 구독자 중 한 명은 아직도 인연으로 이어져 지금은 제가 그 사람의 독자로 있어요. 그 사람이 그린란드에 대한 책을 냈을 당시 인터넷 서점에 관심저자 알림 등록을 한 적이 있었는데, 10여 년 뒤 울진에 관한 신간알림이 떴는데 답장을 받은 기분이었죠 요즘도 종종 안부를 묻고 답할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듭니다.

트위터가 국내에 막 활성화가 되던 시절 당시 swift.fm이란 음악공유 연계사이트가 있었어요, 자신이 갖고 있는 mp3 업로드하면 트위터에 공유되어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당시 저는 음악들을 올리면서 트친들과 공유했었고 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즈음엔 영화음악 모음집을 선별해서 트친에게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어요 diaspora's letter 은 이때부터 그 모음집의 명칭으로 사용됐습니다. 몇 년 동안 계속 플레이리스트를 선물했었는데 처음엔 각 연도별 대표 영화 하나를 뽑는 식이었고, 그 다음엔 배우끼리 이어지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어요. 한 명의 배우를 딱 선정해서 출발해서 그 배우로 돌아오는 리스트였죠. 케빈 베이컨과 엘리자베스 맥거번이 주연한 <결혼의 조건>에서 엘리자베스 맥거번과 숀 펜이 출연한 <젊음의 초상>으로 쭉 이어져 결국에는 케빈 베이컨 주연의 <자유의 댄스>로 돌아오는 리스트거나 유덕화와 양조위가 주연을 했던 <무간도>에서 시작해서 안성기와 유덕화가 함께한 <묵공>으로 이어지는 리스트 음악 파일 하나하나에 영화 속 이미지를 집어넣어 배우릴레이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보내기 하루 이틀 전에 영화 리스트를 뽑아 음악파일들을 찾고 이미지를 캡처해 파일에 이미지 삽입하는 과정을 밤새우며 했는데, 종종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해요. 왜 이런 수고를 하는지. 저는 제가 재밌어서 한다고 답변합니다. 그냥 아이디어가 떠올려지면 이게 되나하고 시도해보는 것이죠 이제 스트리밍 사이트가 대세가 된 지금 mp3 파일을 컴퓨터나 폰에 저장해두는 일은 드물어졌고, 영화음악 플레이리스트 diaspora's letter 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 뒤에 이 명칭은 인스타 계정으로 이용하게 된 겁니다. 영화 속 장면들만 남겨둘 본 계정은 암흑에서 빛이 들어오는 순간을 떠올리며 blanc을 붙였고, 땅 위의 것들을 담는 것엔 jaune을 붙이고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 말을 하고 싶어 나중에 글을 써야겠다 싶은 곳엔 noir를 붙였죠. 정작 글을 써야겠다 싶은 마음에 분류를 했지만, 생각은 많아진 반면 섣불리 글자로 만들어내진 못합니다. 무언가를 썼을 때 남겨진 글이 부끄럽고, 그 생각이 조잡하단 느낌에 마음만 둥둥 떠다니고 있죠.

요즘은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은 내게 맞지 않고, 그저 전달자에 불과하거나한 치 앞만 제시하는 사람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들어요. 그 ‘마음 둥둥’이 인스타 스토리의 폭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일단 제가 하는 일이 일과 후 지독한 피로에 시달리고, 종종 무료함이 찾아오고, 다른 것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트위터와 그것을 이용한 인스타 스토리 및 피드는 제게 가장 손쉬운 즐거움이죠. 알았으면 하는 정보나 이야기, 기사들, 사람들의 반응들을 제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정에 따라 올리는 듯 해요. 저의 분노와 흥미에따라 계속 그 반응들을 연달아 올리게 되는 식이죠.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너무 뜬금없는 내용이겠다 싶을 땐 추적해서 쌓아올리듯 배치하기도 합니다. 원트윗 위에 누군가의 답변, 다른 의견이 담긴 인용 트윗, 반박하는 인용 트윗, 그것에 반응하는 또 다른 트윗 등등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흘러간다 싶게 배치를하죠. 너무 정치 사회적인 이야기가 나열된다 싶을 땐 고양이 사진이나 영상이신문 광고처럼 툭툭 들어가기도 하구요. 우울한 이야기가 나열된 땐 따듯한 이야기를 배치해서 조절을 하고, 제가 다시 들어가 봤을 때 종합적으로 재밌네 하는 느낌이 들도록 하죠. 허나 이것도 제가 '그냥' 심심해서 '대충나열을 하는 겁니다. 사람이 심심하면 무언가를 자꾸 하려들잖아요. diaspora's letter는 제심심함의 역사 같은 겁니다.

 

두 번째 질문 - 퍼스널한 느낌

저는 디아스포라 님의 다른 계정들을 알게 되어요. 프로필에 전부터 다른 계정들이 공개되어 있었는데, 실은 제가 처음 안 계정의 콘텐츠만으로도 양이 너무(?) 많아서 다른 계정들을 살펴볼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번에 살펴보게 되면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얻게 되었습니다. 퍼스널한 느낌의 다른 계정의 기록들을 보면서 제가 처음에 접했던 ⓐdiaspora.s.letter_blanc의 주체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기능에 가까웠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만큼 다른 계정들은 구체적인 개인의 느낌이 강했던 거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계정주가 어떤 분인지는 알 수 없었지요. 여전히 나이도, 성별, 직업도, 거주하는 지역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 점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양가적이어서, 어떤 분인지 알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제 프로필을 좀 더 살펴볼게요.

 

CQUcQ♡Mo를 처음 접했을 땐 제가 모르는 중동지역의 외국어인가 했지만, 나중에야 고양이 이모티콘 두 개에 Mo라는 고유명칭이 덧붙여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향후 부베섬 거주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계정주가 역시나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대부분 관계 맺음과 분리되어 있음. 두 가지를 모두 필요로 합니다.

- 부베섬은 남극해에 떠 있는 위쪽이 빙하로 뒤덮인 무인도라고 합니다. 사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부베섬은 대서양 남쪽 남극 인근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무인도이자 화산섬으로 세계에서 본토의 다른 지역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노르웨이령 섬이다."

- 나무 한그루 @mo.tree에는 한 그루 나무의 오랜 경과가 사진 이미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012년 3월 21일은 나무 사진이 시작된 날짜입니다. 그날 디아스포라 님은 첫 나무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나무사진의 첫 시작을 찾아와 아래와 같은 덧글을 쓴 분이 있었어요.

“나무 한그루는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 이렇게 시작되었군요." 이 문장의 감정을 저는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도 바로 16시간 전에, 디아스포라 님은 나무 사진을 올리셨습니다. 식물들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리고 그토록 꾸준히 한 그루 나무의 사계를 순환을 사진 찍는 분의 마음과 성향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고양이 메이와 꼬맹이(국수) @notre.musique 라는 계정에는 고양이 사진들이 올려집니다. 계정주는 아마도 고양이를 기르는 분이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입니다.

 

디아스포라 님의 답변

우선 이 이야기를 떠올려 봐요 지인의 반려자가 대학원 발표에서 제가 찍는 나무 사진의 사례나무한그루를 들었다며 매일 나무를 찍는 자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말하고 묻던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건 그냥 대충 찍는 거라 방어하는 듯 대답을 했죠 그분의 입에서 예를 들었던 감정들은 어느 날엔 맞고 어느날엔 모두 아니기도 하니까요 그걸 막 이런 기분이라 정의하기 어려웠어요. 그저 나무가 눈에 띄어 찍기 시작했고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SNS 플랫폼이 있었기에 퇴적물처럼 시간을 쌓아두었을 뿐이죠 바라보는 자가 느끼는 감정을 제가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게 무언가 콕 집어 대변할 거라 생각지도 않아요. ‘그냥 앞에 주차된 차가 없는 날에 대충 찍어갔던 겁니다. 그럼에도 왜 이것을 끌어왔을까 하는 힌트는 있습니다. 의미 있는 영화잡지들의 탄생이 있던 해, 일상의 한 컷이 주는 감동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준 영화가 개봉을 했었죠. "모두 다른 사진이야. 천천히 봐야 해" 영화 <스모크>는 나도 저런 긴 시간을 투자해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로망을 갖게 했죠 10년이 흘러도 그 빈도가 줄었어도 나무 사진을 계속 찍어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저는 이 영화의 영향 아래에 있다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모든 사진이 다 똑같다던 작가 친구가 죽었던 자신의 부인이 찍힌 한 장의 사진에 오열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오열하는 감정. 그 감정을 제게 물을 건 아니라 봅니다. 전 그저 조금씩 달라, 천천히 봐. 딱 그 정도만 옆에서 시큰둥하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나무 사진만 올리는 계정은 제 인스타의 첫 번째 계정이에요. 몇 년마다 집을 옮기듯 기존 계정을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해왔는데, 제가 올리는 것들이 이것저것 잡동사니인지라 온전히 제 것만을 담을 공간이 필요하다 싶어 그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둔 예전 계정들을 다시 활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나무만 올리는 반려묘만 올리는 동네 고양이 등 및 다양한 태그를 붙인 것을 남기기 위해 예전에 살던 집들을 불러온 거죠. 지금 사용하는 주 계정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영화와 관련된 태그(#엔딩크레딧직전 #영화_속에서_나는_노래_부르고 #영화_속에서_너는_춤을추네 #영화_속에서_영화가_흐르고 #영화_속_당신의_커피와_담배_이야기 #영화_속_당신의_식사_이야기 등등) 포스트만 남겨두고 떠날 겁니다. 언젠가 남겨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실 혹은 문득 심심할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찾아와 구경할 공간 정도가 됐으면 합니다.

10년 동안 한 나무의 사진을 찍어왔다는 점만 봐도 저는 diaspora의 삶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제 삶은 그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도 어릴 적부터 살아온 동네에 발이 묶인 듯 살아왔어요. 대학을 다닐 때 멀리 전철을 타고 다녔는데, 한강이 보이면 이상하게 집에 왔다는 안도를 했어요. 나는 평생 어딘가 떠나겠다는 마음만 안고 살려나 보다 싶었죠. 해방감을 느낀 사건이 있었는데,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된 친구 덕에 남해로 무작정 갔던 적이 있었죠. "지금 가자"에 반응하듯 새벽에 가방 하나 챙겨 떠나 일주일정도 그곳에 머물렀어요. 그 뒤로 매달 한 번 씩 남해에 내려가는 탈주를 일 년 가까이 했었죠. 그 시기가 제삶의 지축을 흔든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누군가와 끝까지 같이 해내는 것이 살아가는 힘의 축적이라 생각하는데 제 삶은 멈춤의 연속) 이었어요. 멈춰버린 것들이 쌓여갈수록 주변에 사람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지인 이런 것이 아니라 성취감을 함께 느낀 사람이 줄어드는 거죠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더 이상 제가 무언가를 해나갈 동력을 잃고 집착만 늘어갔죠. 답은 이게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시간만 보내며 자꾸 붙잡는 것, 그 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하고 싶은 일 한다고 핑계 대며 쉽게 살아왔으니 이제 아예 다른 삶을 사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서 시작한 체력고갈용 일은 지금 인스타 스토리의 무료함과 겹치게 됩니다. 언젠가 이 일을 관두고 나면 '다시' 섬으로 ‘돌아갈’ 미래를 그려요, 아예 그곳에 살게 될 꿈도 그리고 있는 거죠.

제 인스타 프로필에 쓰인 부베 섬은 어떤 심리 테스트를 했는데 나온 결과물이에요. 아마도 '당신에게 어울리는 섬은?' 이런 거였습니다. 결과가 나왔을 당시 부베 섬에 대해 알아봤는데 정말 아무도 없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무인도라서 너무 당황했어요. 한편으론 참 섬이 외로워 보이는데 좋다 했어요. 예전에 어머니가 사주를 보러갔는데 저에 대해 말하길 "이 애는 당신 뱃 속에서부터 외로웠다" 했대요. 타고난 외로움을 지닌 거죠. 목성이나 토성 등 우주 사진을 봤을 때 드는 첫 생각이 아름답다 경이롭다 이런 것이 아니라 '저기 참 외롭겠다.'예요. 외로움을 발견하고 그 외로움에 두려웠다가 나를 그곳에 두는 상상을 하며 편안해 하죠. 아무튼 부베 섬에 대해 인스타에 언젠가 가야지 하고 올렸더니 자기도 같이 댓글을 단 유일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저를 남해로 이끈 친구입니다. 어떤 심리테스트를 했더니 깊은 심해에 사는 물고기와 저와 같다는 결과를 그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그보다 더 바닥에 있는 물고기 결과를 제게 보여준 친구예요. 늙어 실버타운에 같이 가놀자는 친구인데, 머물 섬이 남해든지 부베섬이든지 결국 이 친구와 함께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사람과의 관계가 절기와 같다. 아니 같아야 한다 생각해요. 멀어졌다 다시 다가오는 반복을 인정해야 하고, 내가 모든 계절이거나 절기가 되려 하는 것도 그걸 바라도 안 된다 봐요. 난 당신에게 입춘이면 되는 거고 당신은 내게 춘분이면 되는 거죠. 왕가위의 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동사서독>이에요. 구양봉은 그 자리에 항상 있는데 매해 황약사는 경칩이 되면 취생몽사라는 술을 들고 찾아오고, 하지엔 모용연이 찾아와 황약사를 죽여 달라 청부하죠 입춘엔 홍칠이 구양봉 곁에 머물다 떠나죠. 주인공인 구양봉이 마지막 자신의 객잔을 불태우고 강호를 떠나며 영화는 끝납니다. 그게 마치 인생 같아요. 난 나무처럼 그대로 있고 새나 곤충, 동물이 매해 찾아왔다 떠나는 듯.

전달자의 수명도 언젠가 끝나리라 생각을 합니다. 또한 제 터전이 바뀌거나 삶이 바뀌면 인스타 계정들도 하나 둘 그 수명을 다하리라 봐요. 제 수명이 다해도 그럴 수가 있겠죠 아무튼, 재미있게 흥미롭게 보고 계시다면 그저 제가 그분에게 절기 중의 하나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디아스포라Mo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