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키오스크 주문, 엄두가 안 나”… 세대별로 갈라진 디지털 문해력 격차

조성철
기사 듣기

서울 용인시에 사는 70대 A씨는 얼마 전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주문을 포기했다. 매장에 무인 주문대(키오스크)만 설치돼 있었는데, 작동법을 몰라 애를 먹은 탓이다. A씨는 “지난번엔 옆에 있던 청년이 도와줬는데, 혼자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에게 외식이나 커피 한 잔 주문조차 버거운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A씨의 사례는 결코 남 일이 아니다. 최근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처음 실시한 ‘제1차 성인 디지털문해능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1명가량(8.2%)은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 같은 디지털 기기의 기본적인 조작도 어렵게 느낀다. 기본 조작은 가능하지만 생활 속 활용이 미흡한 이들(17.7%)까지 포함하면 성인 4명 중 1명(25.9%)이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기를 원활히 쓰지 못하는 ‘디지털 취약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급속한 디지털화 속에서 “학력과 지역, 소득에 따른 (디지털) 양극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특히 고령층과 저학력·저소득층일수록 ‘디지털 소외’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세대별 디지털 문해 수준 현주소 – 청년층 vs. 중·장년·고령층

이번 조사에서 세대 간 디지털 문해력 격차는 뚜렷하게 드러났다. 청년층(1839세)의 경우 ‘디지털 문해능력이 부족한’ 수준 1 성인은 해당 연령 인구의 불과 0.8%에 그쳤다. 반면 고령층(60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2명꼴(23.3%)이 수준 1에 해당해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 사용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청년층 8.9%에 불과했지만, 4059세 중장년층은 34.8%, 60대 이상 고령층은 77.7%에 달해 연령대가 높을수록 디지털 기기 사용에 불편을 호소하는 비율이 급증했다. 중·장년층의 상당수도 디지털 활용에 애로를 느끼지만, 고령층에서 특히 취약하며 세대 차이가 극명한 셈이다.

 

세대 외에도 학력과 소득 수준에 따라 디지털 문해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중학교 졸업 이하 저학력 성인의 34.6%가 수준 1로 분류돼 가장 취약했고, 고졸 이상(6.3%)이나 대졸 이상(0.9%) 성인에 비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월 가구소득 300만 원 미만 저소득층도 25.9%가 수준 1로 집계돼, 300만~500만 원 미만(4.9%)이나 500만 원 이상(1.2%) 가구보다 디지털 문해력이 크게 떨어졌다. 남성보다 여성이 디지털 문해 최하위 비율이 높게 나타난 점도 눈에 띈다 (여성 10.0%, 남성 6.3%). 이처럼 나이가 많고 교육 수준·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전반적인 디지털 역량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으며, 도시보다 농산어촌 지역에서 디지털 문해력 부족 현상이 두드러졌다.

왜 디지털에 낙오되나 – 교육 기회와 기술 노출의 차이

세대별 격차의 근본 원인으로는 성장 과정에서의 디지털 환경 노출도와 교육 기회 차이가 꼽힌다. 청년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학교 교육이나 사회생활 속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이 일상화된 반면, 중·장년층 이상은 성인이 된 후에야 디지털 기술이 보급되어 체화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특히 현재 고령층이 젊은 시절에는 아날로그 방식이 주류였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적었다. 또한 경제적 여유나 주변 환경에 따라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빈도에 큰 차이가 발생했다. 소득이 낮으면 최신 스마트기기나 인터넷 환경에 투자하기 어려워 디지털 경험이 제한되고, 농촌이나 고령자가 많은 지역은 디지털 인프라 접근성이 떨어져 자연스레 기술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교육 수준과 정보 접근성의 격차가 디지털 역량 차이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문해교육 전문가들은 학력이 낮을수록 새로운 기술을 독학으로 습득하기 어려워 공식적인 교육 프로그램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문자 해독이나 외국어(영어 UI 등)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스마트폰 앱이나 키오스크 메뉴를 이해하기 더 어렵고, 배우기를 포기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반면 청장년층은 학교나 직장 등에서 필요에 의해 디지털 기술을 반복 학습할 기회가 많아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역마다 설치된 도서관 등 공공기관을 적극 활용해 성인들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민간에서도 은행 등 필수 앱 사용 교육을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 기회의 유무가 세대·계층 간 디지털 능력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문맹’이 부르는 사회·경제적 소외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불편을 겪게 되고, 이러한 디지털 소외가 누적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비대면 서비스 이용의 어려움이 있다. 앞서 A씨 사례처럼 무인 주문기만 있는 식당에서 제대로 식사를 주문하지 못하거나, 온라인으로만 가능한 할인·혜택 정보를 접하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 취업준비생은 “요즘 채용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진행돼 컴퓨터 사용이 서투른 어르신들은 구직 정보조차 얻기 힘들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한 60대 이상 응답자가 무려 77.7%에 달해, 대다수 고령층이 생활 속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카카오톡으로 전송된 모바일 청첩장 열어보기, 은행 앱으로 송금하기, 스마트폰 지도 앱으로 길 찾기 등 젊은 세대에겐 당연한 일들이 고령층에겐 높은 문턱으로 작용해 사회 참여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사회 안전망 서비스에서도 고령층이 소외될 위험이 제기된다. 각종 행정·복지 서비스가 온라인화되면서 디지털 문해력이 낮은 노인들은 정보에서 밀려나거나 신청 절차를 못 따라가는 경우가 생긴다. 예컨대 재난지원금이나 의료 서비스 예약을 온라인으로만 받으면, 스마트폰 사용 미숙으로 지원 자체를 못 받는 취약계층이 발생할 수 있다. 또 금융 분야에서는 디지털 취약층이 보이스피싱 등 사기 범죄 표적이 되거나, 비대면 거래를 못 해 금융 혜택에서 배제되는 문제도 지적된다. 교육부 조사 결과 디지털 기술로 문제 해결을 하는 역량(디지털 기반 문제해결 영역) 점수가 100점 만점 중 평균 53.3점으로 가장 낮았는데, 이는 일상 속 문제 상황에서 기술을 활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성인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활용 능력의 격차가 곧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시대”라고 경고하며, 모두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새로운 사회적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 – 찾아가는 교육부터 맞춤 지원까지

서울역 등지에는 ‘디지털 안내사’로 불리는 도우미 인력이 배치되어,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을 직접 돕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기차역, 지하철역, 마트 등 어르신들이 자주 찾는 다중이용시설을 순회하며 키오스크 활용법과 스마트폰 사용법을 안내하는 디지털 안내사 150명을 운영 중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해하는 노인들을 직원이 일대일로 도와주는 모습은 이제 역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디지털 약자를 위한 맞춤형 지원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경기 광명시의 ‘디지털 윤리교육’, 경북 고령군의 ‘디지털 세상과 소통하기’ 프로그램 등 전국 각지의 평생학습도시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춘 시민 디지털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동주민센터와 복지관 등을 통해 어르신 대상 스마트폰 교실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정부도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성인 대상 디지털 역량 강화 정책을 한층 확대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첫 도입한 ‘한글햇살버스’를 통해 문해교육 접근성이 낮은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는 디지털 교육을 강화하고, 민간기업 및 공공기관과 협력해 은행, 매장 등 일상 현장에서 체험형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저소득층 성인과 65세 이상 노인 약 8만5천 명에게는 연간 35만 원 상당의 평생교육 이용권(디지털 배움카드)을 지급하고, 만 30세 이상 성인에게는 AI·디지털 분야 학습을 지원하는 ‘디지털 커리어 점프패스’ 사업을 신설하여 사회·경제적 격차 완화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디지털 취약계층 중에서도 특히 어르신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전방위적 지원책을 마련해 누구나 디지털 사회의 혜택을 누리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은옥 교육부 차관 역시 “이번 조사를 계기로 디지털 기기·기술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의 규모와 특성을 자세히 확인했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디지털에 친숙하지 못한 성인들이 소외되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디지털 기술이 생활 필수역량이 된 초연결 시대, 세대와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디지털 세상에 포용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디지털 문해력 격차를 해소하는 일은 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숙제이자, 교육 평등과 정보 접근권 보장의 문제이다. A씨처럼 “디지털이 아직도 두렵다”고 느끼는 이웃이 뒤처지거나 소외되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일 – 그것이 디지털 포용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일 것이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