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디지털 능력주의의 부작용: 외로움과 민주주의의 위기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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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ster for Loneliness장관 사진 사진:Minister for Loneliness 공식 사이트
Minister for Loneliness장관 사진 사진:Minister for Loneliness 공식 사이트

 

2018년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신설하여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이듬해인 2021년 2월 일본 역시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자살률에 대응해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전담 대책실을 출범시켰다. 이처럼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성격이나 일시적 감정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장관을 둘 정도로 사회 전체가 직면한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촉발된 불평등과 경쟁은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주요 배경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경쟁 속 청년 세대의 사회적 고립과 울분 어린 외로움이 누적될 경우, 민주주의의 토대인 신뢰와 연대가 흔들리고 극단적 정치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디지털 시대 능력주의가 낳은 새로운 불평등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사회 전반에 효율과 혁신을 가져왔지만, 그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급격한 기술 발전 속도와 플랫폼 경제의 네트워크 효과는 이른바 "승자독식" 구조를 만들었다. 거대한 플랫폼일수록 더 많은 사용자를 빨아들이며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소수의 기업과 인재에게 부가 쏠린다. 반면 다수의 사람들은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뒤처지기 쉽다. 일자리 측면에서도 디지털 자동화로 좋은 일자리(고숙련 직종)는 줄고, 단순노무 중심의 저숙련 일자리만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컨대 배달·대리운전 등 플랫폼 노동이 급증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사회보험과 고용안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형 노동이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와 일자리 양극화는 능력주의라는 사회 통념과 결합하며 더 큰 문제를 빚는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성취와 보상이 결정되는 것이 공정하다는 신념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 능력주의 성향이 강한데, 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6%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수 격차가 큰 편이 공정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가정형편이나 부양가족 수 같은 요인은 임금에 반영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69%에 달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과 성과만이 정당한 보상의 기준이며 개인의 필요나 어려움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한편으로는 경쟁을 독려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적 불평등이나 운의 요소를 간과하게 만든다.

문제는 현실에서 능력주의의 승자가 될 수 있는 자리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대기업·전문직 등 고연봉 좋은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0~15% 남짓에 불과하다. 상위 10%의 임금은 연간 평균 1억 원에 육박하지만, 한 등급만 내려가도 평균 연봉이 4천만 원 이상 떨어지는 식이다. 결국 대다수는 필연적으로 평균 이하의 보통 일자리에 만족해야 함에도, 사회 분위기는 “1등 외에는 패배자”라는 냉혹한 메시지를 보낸다.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여기기 쉽고, 낙오된 이들은 스스로를 탓하며 좌절하게 된다.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경고했듯,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패배한 다수는 무기력한 나락에 빠지지만, 정작 자기 불행의 책임을 사회에 항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에게 돌린다”는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청년 세대, 성취 압박 속 고립과 외로움에 빠지다

이러한 디지털 능력주의 사회의 부작용은 특히 청년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통계에 따르면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가장 높은 연령층은 20대로, 노년층보다도 청년층의 외로움 지수가 높게 나타나는 것이 오늘날의 특징이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1인 가구로 사는 청년들이 늘고, 취업난 속에 학업→취준(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며 사회적 역할을 갖지 못한 채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2022년 말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 거주 19~39세 청년의 약 4.5%가 6개월 이상 외부와 단절된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서울에만 약 12만9천 명, 전국적으로 약 61만 명에 달하는 규모다. 더욱이 이들 중 상당수는 은둔 기간이 수년 이상 장기화되어 사회 복귀가 쉽지 않은 상태다.

청년들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게 되는 배경에는 과도한 성취 압박과 비교 문화가 자리한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입시 경쟁을 거치고, 대학을 나와도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까지 수십 차례의 탈락 경험을 겪는 것이 오늘날 청년들의 현실이다. “노오력”(노력 부족)에 대한 조롱과 낙인,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비교되는 동년배들의 성공담은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대인관계를 기피하게 만든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느낀 청년들 중 일부는 주변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방 안에 틀어박히는 은둔형 삶을 택하기도 한다. 설령 겉보기엔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이라 해도 내면의 고립감과 고독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항목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할 만큼, 개인이 사회적 지원망 없이 버텨야 하는 나라다. 젊은층일수록 가족이나 이웃보다 온라인 공간이나 혼자만의 활동에 몰입하면서 관계의 빈곤을 느끼는 아이러니도 나타난다.

이렇게 도움받지 못한 채 혼자 견디는 생활이 길어지면,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서울시 조사에서 고립·은둔 청년의 20%가량이 정신과 치료나 약물 복용을 하고 있다고 답했고, 신체 건강 상태도 일반 청년에 비해 현저히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청년기 장기간의 사회적 고립을 노년기 고립보다도 위험한 신호로 본다. 자아정체성이 형성되고 인생 경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자신을 “무능력한 실패자”로 여기게 되면, 이후 사회 진출과 인간관계 형성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청년 은둔자들이 스스로의 잘못이라는 자기혐오에 빠져 주변에 도움조차 청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울분 어린 외로움, 민주주의를 흔들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다. 만성화된 외로움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연대와 민주주의 건강성에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대중적 고립과 외로움이 어떻게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를 떠받친 토양이 되었는지 분석했다. 뿌리뽑힌 사람들(고향과 일자리를 잃고 현대 도시의 군중 속에 내던져진 개인들)이 느끼는 깊은 고독과 무력감이 히틀러와 같은 극단 세력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외로운 인간은 타자를 잃고,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잃고, 세상에 대한 지각을 잃어버린 인간”이다. 이들은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기에 공적인 문제를 공익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울분과 불신의 렌즈로만 바라보게 되고, 결국 선동가의 달콤한 구원 약속에 취약해진다고 지적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외로움에 빠진 개인들의 분노는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정치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사회적 고립감이 큰 집단일수록 극단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들이 세계 각국에서 보고되고 있다. 트럼피즘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영합 정치나, 유럽 각지의 극우 포퓰리즘이 대두하는 배경에도 글로벌화와 디지털화에서 소외된 이들의 박탈감과 분노가 놓여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청년 세대의 울분은 인터넷과 커뮤니티 공간에서 때때로 혐오·차별적 담론으로 표출되곤 한다. 서울대 유명순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울분지수 역시 젊을수록, 1인 가구일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앞서 살펴본 외로움 고위험군의 사회적 분포와 정확히 일치했다. 개인에게 향했던 자기혐오적 감정이 밖으로 투사되면서, 누군가를 향한 막연한 적대감과 증오 심리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가 선동적인 정치 언어와 결합되면 민주 사회의 합리적 토론과 타협은 실종되고,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는 분열적 분위기가 강해진다. 결국 외로운 개인의 증가는 사회 전체의 신뢰 자본을 잠식하여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공감과 돌봄으로 고립의 사슬 끊기

그렇다면 디지털 능력주의 시대의 외로움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우선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강조한다. 외로움에 빠진 사람들을 낙오자나 실패자로 낙인찍는 시선부터 거두어야 한다. 영국과 일본이 앞장서서 보여주듯, 외로움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현대 사회구조가 초래한 새로운 위험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도 최근 고독사 방지법을 제정하고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을 시작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당장 외로운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촘촘한 안전망은 여전히 부족하다. 예를 들어 정신건강 상담이나 커뮤니티 공간 확충, 은둔 청년 발굴 및 자립 지원 등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사회적 돌봄의 개념을 노인이나 아동뿐 아니라 청년과 장년까지 포괄하도록 복지 패러다임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전 생애주기별로, 외로움을 느껴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 언제든 손 내밀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는 현장의 제언처럼, 언제 누가 도움을 청해도 부끄럽지 않고 손쉽게 닿을 수 있는 사회적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디지털 시대의 불평등 완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이 만들어낸 부의 편중과 일자리 격차를 조정하지 않고서는 외로움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기술 거물들까지 기본소득을 거론하며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디지털 경제의 성과가 소수에게 치우친 현실을 인정하고, 누구나 최소한의 존엄과 연대감 속에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토대 마련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교육, 노동, 복지 등 각 분야에서 능력주의의 그늘을 줄이고 공정의 기준을 재설계하는 사회적 대화도 필요하다. 예컨대 입시와 취업 경쟁 완화, 직업 간 임금 격차 축소, 주거·의료 등 기본생활 보장의 강화는 모두 외로움과 불안을 줄이는 사회적 투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변화다. 성취를 위한 경쟁도 좋지만, 넘어졌을 때 부축해줄 수 있는 공동체적 연대가 없다면 누구나 외로운 패배자가 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를 북돋우는 분위기가 절실하다. 한때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는 결국 누구나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절감했다. 디지털 능력주의 시대의 외로움은 단순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시험하는 도전이다. 외로움에 빠진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감각을 되찾는 노력만이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