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디지털 시대의 능력주의와 번지는 외로움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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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SNS로 모두가 연결된 디지털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지만, ‘외로움’은 오히려 현대인을 집어삼키는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고독 문제가 심각해지자, 2018년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고, 일본 또한 고독 담당상을 신설했다. 영국에서는 외로움으로 인한 경제 손실이 연간 5조 원을 넘는다는 보고까지 나왔다.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21세기를 ‘외로운 세기’로 부르며, 기술 발전과 공동체 붕괴로 인한 고독이 현세대의 가장 큰 고통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움직임은 외로움이 더 이상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임을 보여준다. 특히 젊은 세대의 외로움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독이라 하면 주로 노년층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최근 통계들은 가장 외로운 세대로 10대 후반에서 20~30대 초반의 청년층을 지목한다. 실제 2018년 BBC가 5만5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 세계 고독 조사에서는 16~24세 응답자의 40%가 “자주 외롭다”고 답해, 다른 연령군보다 무려 13%포인트 높았다. 디지털 원주민 세대인 이들은 겉으로는 늘 온라인 소통을 하지만, 정작 가장 깊은 외로움을 호소하는 역설적인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통계로 본 ‘가장 외로운 세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시가 2022년 말 처음 실시한 청년 고립·은둔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거주 19~39세 청년의 4.5%(약 12만9천 명)가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은둔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전국으로 환산하면 약 61만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추산이다. 여기서 ‘고립’은 6개월 이상 타인과 거의 교류하지 않은 상태, ‘은둔’은 6개월 이상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은 상태로 정의됐다. 이들은 스스로 세상과 단절한 채 지내는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청년들이 이렇게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 계기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실직 또는 취업난”이었다. 서울시 조사에서 45.5%의 청년이 취업 실패나 실직을 겪고 난 후 은둔을 시작했다고 답했고, 그 다음으로 “정신적 어려움”(40.9%), “대인관계의 어려움”(40.3%) 순이었다. 특히 남성 응답자는 취업 좌절을, 여성 응답자는 심리적 어려움을 주요 계기로 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취업난과 사회진입의 좌절이 청년들을 사회에서 밀어내고 있다. 실제로 한 취업준비생은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후 방에 틀어박혔다”며, 소위 ‘낙오자’가 된 좌절감에 사로잡혔다고 토로한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며 부모 등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시간도 늘어나자, 미안함과 죄책감에 더 움츠러드는 악순환도 엿보인다.


이런 사회적 단절 상태는 개인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고립된 청년 중 상당수가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으며, 5명 중 1명은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신체 활동 부족으로 신체 건강 악화도 흔하다. 더욱 심각한 점은, 한 번 은둔에 빠지면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상당수 청년이 은둔 생활을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은둔 기간이 5년, 10년 이상 장기화된 사례도 적지 않다. “6년 만에 집 밖에 처음 나왔다”며 도움을 청한 어느 은둔 청년의 사례처럼, 이들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일상 복귀가 힘든 상태에 놓여 있다.


능력주의 사회, 실패의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그렇다면 왜 특히 젊은 세대가 이처럼 고립과 외로움에 빠지고 있을까?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치관, 즉 ‘능력주의’(meritocracy)의 그림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성공은 재능과 노력이라는 능력에 달려 있고,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믿음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결과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적지 않다.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경고했듯,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노력만을 내세우는 경향이 뚜렷하다. 대부분의 성공한 이들은 자신의 재능이나 운보다는 “내가 노력해서 이뤄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능력주의는 현실에서 어느새 ‘노력주의’로 변질된다.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굳어지면,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즉 성공은 미덕, 실패는 게으름이라는 도덕적 평가가 따라붙는다. 한국처럼 어릴 때부터 성적과 스펙 경쟁에 내몰리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하다. 공부 잘하면 착한 아이, 좋은 대학 가야 훌륭한 자식이라는 인식 속에서, 청년들은 실패를 곧 도덕적 결함으로 느낀다. 대학 입시, 취업 관문 등에서 탈락의 쓴맛을 볼 때마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며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능력주의가 강조된 사회에서는 구조적인 어려움도 개인 책임으로 돌아간다. 취업난, 경기 침체 같은 환경적 요인에 청년들이 좌절해도, 주위에서는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도움을 청하기는커녕 스스로를 탓하며 고립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실제 한 설문에서 한국인의 66%가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 차이가 클수록 사회가 공정하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높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자리는 극히 일부(약 10~15%)에 불과하다. 결국 대다수의 보통 청년들은 승자독식 경쟁에서 탈락을 경험하게 되고, 이때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며 움츠러드는 현상이 벌어진다.
한 정치철학자는 이를 두고 “능력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패배의 책임을 전적으로 자기에게 돌리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남에게 피해주기 싫다는 청년층의 정서도 한몫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자체가 무능함의 증거로 비쳐질까 두려워, 청년들은 어려워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대신 “민폐 끼치지 말고 혼자 견뎌내라”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가한다. 이러한 자기 탓과 자기 검열의 굴레 속에서 청년들은 점점 은둔의 동굴로 들어가기 쉽다.


디지털 경제의 양극화, 밀려나는 다수
여기에 디지털 시대의 경제구조도 외로움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정보기술(IT)이 주도하는 디지털 경제는 이전 산업혁명들보다 부의 쏠림과 격차가 훨씬 심하다. 인터넷과 플랫폼 기술은 “승자독식”의 성향이 강해, 선도 기업과 소수 인재에게 막대한 이익이 집중된다. 예컨대 검색 엔진 시장의 90% 이상을 구글이 장악하고, SNS 분야도 한 기업(메타)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이용자를 거느리는 등, 소수 거대 기업이 대부분의 시장을 차지한다. 그 결과 디지털 부(富)의 과실을 누리는 승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부의 총량 증대가 전체 사회에 혜택을 주지 못하고 일부에 편중되는 현실이다.


특히 일자리 양극화 문제가 두드러진다. 자동화와 AI의 발전으로 중간 수준 일자리가 줄어들고, 상위 전문직과 하위 저임금 서비스직으로 노동시장이 양극화되고 있다. 한때 중산층의 버팀목이던 안정적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 얻기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 등 상위 10~15% 양질의 일자리에 들어가야 괜찮은 삶을 꿈꿀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한정적이기에, 절대다수의 평범한 청년은 탈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40%
청년 외로움 비율
BBC 고독 조사
약 12만9천 명
서울 청년 고립·은둔
서울시
45.5%
은둔 계기(취업난)
서울시 실태조사

 

또 한편으로 디지털 기술은 노동의 형태도 바꾸고 있다. 플랫폼 경제의 확산으로, 배달·대리·프리랜서 등 비정형 노동이 늘었다. 이들은 겉으론 ‘자영업자’(사장님)로 분류되어 고용 안정이나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실제 한국에서는 약 220만 명이 플랫폼을 통해 일하고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 없이 별점 평가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의 노동환경은 청년들에게 경제적 불안정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을 안겨주고, 이는 사회적 고립감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요컨대 디지털 기술의 고도화와 능력주의적 경쟁 압력이 결합된 사회에서, 많은 평범한 청년들이 패배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한 설문에서 “내 주변에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사람이 거의 없다”고 답한 비율이 청년층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1인 가구 청년이나 가족과 떨어져 사는 청년일수록 이러한 사회적 신뢰망의 부재를 호소했다는 보고도 있다. 나 혼자 세상과 싸우고 있다는 고립감 속에서, 청년들은 점차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외로운 군중’이 부르는 위험한 신호
외로움의 확산은 개인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일찍이 “현대의 고립된 대중은 전체주의의 온상이 된다”고 경고했다. 사회로부터 뿌리 뽑혀 고립된 개인들이 모이면, 서로 연대하지 못한 채 분노와 혐오만 공통분모로 가진 ‘군중’이 형성된다. 아렌트는 이를 “분노로 뭉친 부정적 연대”라 부르며, 이런 상태의 대중이 전체주의 운동의 원료가 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나치 독일의 대중이나, 현대의 일부 포퓰리즘 지지층에서 이러한 고립된 분노의 표출이 관찰된다는 지적이 있다. 사회에 불만은 크지만 건설적 비전이나 신뢰는 부재한 사람들이 극단의 구원자를 찾아 나서는 현상이다.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포퓰리즘 정치의 득세 배경에도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의 증가가 있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주변에 의지할 곳 없이 혼자인 느낌이 극단적 정치선동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예전엔 일부 주변인들만 겪던 극단적 고립이 이제는 일상의 경험이 되었다”며, 만연한 외로움이 전체주의적 지배를 준비한다고 갈파했다. 실제로 2016년 미국 대선 직후 아렌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 판매량이 급증한 일화는, 현대 사회가 겪는 위기와 외로움의 연관성을 시사한다.
외로운 개인들은 세상에 대한 신뢰와 애착을 잃기 쉽다. “내가 이렇게 힘들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박탈감이 공동체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번지면, 민주주의의 사회적 토대가 흔들린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자연상태”처럼 각자도생의 심리가 퍼지면, 공공선이나 연대의식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렇게 고립된 분노의 군중은 선동가의 표적이 되기 쉽다. “내가 당신들을 구원하겠다”는 극단주의자의 손짓에 기댈 곳 없던 이들은 쉽게 매혹당할 수 있다. 외로움이 사회적 증오와 혐오로 번지며 민주주의를 좀먹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다.


연결과 돌봄으로 해법 찾기
디지털 시대 능력주의가 낳은 외로움의 문제는 복잡하지만, 그 해법의 키워드는 “다시 연결하기”라 할 수 있다. 개인을 탓하고 내버려두는 문화에서 벗어나 사회적 안전망과 돌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성과만 중시하는 교육 대신 협력과 공감의 가치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감을 청년들에게 주어야 한다. 정신건강 지원이나 커뮤니티 공간 조성 등 고립 예방정책도 확대되고 있다. 영국, 일본처럼 우리나라 서울시도 ‘외로움 담당 기구’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보건복지부도 고립청년 지원 대책을 발표하며, 은둔 청년에게 맞춤형 상담, 주거, 취업 연계 등을 제공할 계획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인식 전환이다. “청년이라도 충분히 외로울 수 있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공감이 필요하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 차원에서 청년들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손 내미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외로움은 개인 잘못이 아니라 시대적 산물이라는 김만권 정치철학자의 지적처럼,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과도한 경쟁과 낙오의 두려움 속에 혼자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연결의 사다리를 내미는 사회, 함께 잘 사는 길을 모색하는 공동체가 절실하다.


디지털 혁신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증가하는 청년 세대의 외로움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능력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직시하고, 고립된 개인들을 다시 사회와 이어주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진정한 포용과 공정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외로움의 습격에 맞서 연대와 돌봄으로 응전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고립·은둔 청년한국 정부·지자체능력주의 사회 구조
이 기사가 던지는 질문
디지털 초연결 시대에 왜 청년 세대는 오히려 더 깊은 고립과 외로움에 빠지고 있는가?
능력주의 사회는 실패한 청년들에게 구조적 문제 대신 개인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