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묵은 상처를 치유하겠다던 국가적 약속이 표류하고 있다. 총사업비 1,417억 원이 책정된 '여순 평화공원' 건립 사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용서와 화해'라는 거대한 목표를 내걸었지만, 현실은 해묵은 이념 논쟁과 부지 선정을 둘러싼 지역 갈등, 그리고 예산 확보라는 다층적 장벽에 부딪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치유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오히려 새로운 분열의 불씨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지지부진한 현실은 사건의 비극이 시작된 땅 위에 세워진 기념물의 규모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34만㎡ 규모의 평화공원이라는 거대한 청사진은 아직 종이 위에 머물러 있지만, 사건의 첫 총성이 울렸던 여수시 신월동 옛 14연대 주둔지에는 고작 5억 8,300만 원을 들인 219㎡(약 66평) 넓이의 단출한 '여순사건 홍보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압도적인 규모의 차이는 지난 7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여순의 비극을 다뤄온 방식, 즉 거대한 상처 앞에 작은 위로를 건네는 데 그쳤을 뿐 완전한 치유와 화해의 약속은 끊임없이 지연시켜 왔음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심지어 이 작은 홍보관조차 건립 과정에서 전시 내용을 둘러싼 지역 단체 간 이견으로 설계가 일시 중단되는 등 내홍을 겪었다는 사실은, 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이 모든 난관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여순사건 특별법)의 20년이 넘는 입법 지연이 자리 잡고 있다. 2001년 제16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법안은 무려 네 차례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회기 만료로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법이 마침내 제정된 것은 사건 발생 73년 만인 2021년 6월 29일이었다.

 

이 기나긴 입법 공백은 단순한 행정적 실패가 아니었다. 이는 사건의 성격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깊은 이념적 균열이 정치적 합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2021년 통과된 법안마저 관련 자료 제출 강제 조항이 빠지고 가해자 이름을 보고서에 명시할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껍데기뿐인 특별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국가가 진실 규명을 외면하는 20년의 세월 동안,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 속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고, 이는 대를 잇는 고통으로 남았다. 수많은 고령의 유족들은 "특별법 통과라도 보고 눈 감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지연된 정의는 결국 거부된 정의와 다르지 않았다.

평화공원 건립을 둘러싼 모든 갈등의 근원에는 결코 화해하지 못하는 두 개의 역사 서사가 있다. 이는 단순한 과거 해석의 차이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정치 투쟁이다. 오랫동안 국가의 공식 입장이었던 '공산 반란' 서사는 1948년 14연대 내 남조선노동당 세력이 신생 정부 전복을 위해 일으킨 무장 폭동으로 사건을 규정한다. 이 시각에서 군경의 무자비한 진압은 국가 존립을 위한 정당한 행위로 해석되며, 국방부는 한때 "무고한 양민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에 맞서는 것은 '정의로운 항쟁' 서사다. 이 관점은 당시 군인들의 봉기가 제주 4·3사건의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양심적 행동이었다고 평가한다. 봉기 군인들이 내건 '동족상잔 결사반대'라는 구호는 이 서사의 핵심 근거다. 이 두 서사의 대립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정치 지형을 가르는 단층선으로 작동한다. 대통령의 기념사가 "부당한 명령에 맞선" 행위를 언급하면, 보수 진영은 즉각 '남로당의 무장 반란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역사 왜곡'이라며 이념 전쟁에 불을 지핀다. 이처럼 끝나지 않는 논쟁은 70년 넘게 지역 사회를 옥죄어 온 '레드 콤플렉스'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용서와 화해, 치유와 상생"이라는 가치는 공원의 물리적 위치를 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사업은 오히려 새로운 갈등과 분열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갈등의 중심에는 여수시가 자체 연구용역을 통해 최적 후보지로 선정한 '율촌면 도성마을'이 있다. 여수시는 순천 등 인근 지역과의 접근성, 여수공항 인접, 낙후된 한센인 정착촌 환경 개선 등 실용적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충분한 사전 협의 없는 발표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렀다. 순천 지역 유족회는 "사건과 역사적 관련성이 없는 장소"라며 "일방적 추진이 지역 갈등을 조장한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정작 부지 당사자인 도성마을 주민들조차 "주민 공청회 한 번 없었다"며 분노했고, 여수시 내부에서조차 시장직 인수위원회가 재검토 의견을 내는 등 이견이 노출됐다. 화해를 목표로 한 사업이 그 과정에서부터 불통과 갈등을 야기한 셈이다.

평화공원 건립의 또 다른 거대한 산은 1,417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는 문제다. 여수시는 사업비 전액 국비 지원을 건의하고 있어, 사업의 운명은 전적으로 중앙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다. 가장 결정적인 관문은 대규모 국가재정사업에 필수적인 '예비타당성 조사'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이념적, 지역적 갈등은 예산 확보 과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기획재정부와 같은 중앙부처 입장에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고 극심한 지역 갈등을 빚는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 간의 유치 경쟁은 중앙정부에게 예산 지원을 거부할 가장 합리적인 명분을 제공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낳는다.

이러한 난관은 비슷한 상처를 먼저 겪은 제주 4·3 평화공원의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여순사건은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시작된 '자매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제주 역시 공원 조성 과정에서 4·3을 '공산폭동'으로 규정하려는 '폭동론'의 끈질긴 공세와 희생자 범위 설정을 둘러싼 극심한 이념 투쟁을 겪었다. 제주의 경험은 공원 건립이 갈등의 끝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현재 제주 4·3 평화재단의 이사장 임명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은, 싸움의 무대가 건립 이후 '기억을 해석하고 관리하는 기관의 통제권'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여순 평화공원 건립을 둘러싼 복합적인 난관들은 대한민국이 폭력으로 얼룩진 현대사를 온전히 직시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적 증상이다. 이 사업의 성공은 몇만 평의 부지나 몇천억 원의 예산으로 측정될 수 없다. 진정한 성공의 기반은 사회적, 정치적 합의 그 자체에 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부지 선정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을 끝내기 위해 여수, 순천 등 모든 피해 지역이 참여하는 초지역적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또한, 섣부른 기념물 건설에 앞서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연장하여 철저한 진실 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피해사례 접수 건 중 심의가 완료된 것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불완전한 진실 위에 세워진 공원은 공허한 기념비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이 사업이 정권 교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안정적인 예산 지원과 제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초당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평화공원으로 가는 여정 자체가 평화로워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