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두부 업체 살려주세요! 콩 무역전쟁의 여파, 식량안보 경고등 켜졌다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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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미·중 무역 갈등이 농산물 ‘콩’을 관세 보복 수단으로 삼았던 트럼프 정부 시절 이후, 식량 자급과 공급망 안보가 전 세계 식품 정책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 여파로 한국에서도 식량을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기 중국은 미국산 대두(콩) 수입을 대폭 줄이며 미국 농가에 큰 타격을 입혔고, 미국은 한국 등 제3국에 대두 구매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무역전쟁의 불씨’가 된 콩 사태는 식량도 전략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한국의 식량안보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중 무역전쟁이 남긴 ‘콩’의 교훈

2018년 발발한 미·중 관세전쟁의 핵심 표적 중 하나가 대두였다. 중국은 자국 대두 소비량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할 만큼 미국산 콩에 크게 의존해왔고, 이에 맞서 미국 농산물을 정조준해 보복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으로 미국 중서부 농가가 직격탄을 맞자 미국 정부는 한국 등 다른 나라에 “미국산 콩을 더 사달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식량작물이 통상 분쟁의 무기가 된 사례는 한국에 곡물 무기화의 현실을 일깨웠다. 곡물 자급률이 20%대에 불과한 한국은 주변국 갈등이나 기후위기 시 식량 공급이 막힐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식량 자급과 공급망 안정성을 국가 안보 수준으로 격상하기 시작했다.

수입 콩 급감에 두부·두유 업계 ‘비상’

올해 들어 국내 두부·두유 업계에는 실제 콩 부족 사태가 현실화됐다. 정부가 국산콩 사용을 늘리겠다며 수입 콩 물량을 예년보다 약 13% 줄인 27만 톤만 공급한 탓에, 두부 제조업체들은 가을부터 원료 고갈 위기에 내몰렸다. 콩 수입량 축소로 국내 두부의 80%를 차지하는 수입 콩 두부 원료가 부족해지자 일부 중소 두부공장은 조업 중단을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이대로라면 다음달 초 강원 지역 두부업체 40여 곳이, 중순에는 광주·전남 지역 80여 곳이 줄줄이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두부뿐 아니라 두유 업계도 11월이면 수입 콩 재고가 바닥날 것으로 예상돼, 업계는 정부에 긴급 원료 공급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수입콩 부족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서민 식재료인 두부 공급 감소로 가격 인상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입 콩 추가 공급 방안 검토”에 착수했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비축 물량 일부를 긴급 방출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원료를 낙찰받지 못한 영세업체들이 속출하자 업계에서는 “콩이 있어야 두부를 만들지 않겠느냐”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차이가 큰데 수입 콩을 줄인다고 해서 국산 콩 소비가 당장 늘지는 않는다”며 “중소 두부업체들은 그동안 값싼 수입콩 두부 시장에 특화돼왔기 때문에 갑자기 비싼 국산콩 두부로 전환하기도 어렵다”라고 호소했다. 이번 사태로 국산콩 육성 정책과 영세 식품업계 현실 간의 엇박자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료값 상승으로 서민 대표 먹거리인 두부 가격도 이달 대대적으로 오른다. 저렴한 식재료로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두부값 인상은 다른 장바구니 식품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올릴 수 있어 밥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두부 시장 점유율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풀무원, CJ제일제당, 대상 등 세 곳이 원재료비 인상 등을 이유로두부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두부.
원료값 상승으로 서민 대표 먹거리인 두부 가격도 이달 대대적으로 오른다. 저렴한 식재료로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두부값 인상은 다른 장바구니 식품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올릴 수 있어 밥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두부 시장 점유율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풀무원, CJ제일제당, 대상 등 세 곳이 원재료비 인상 등을 이유로두부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두부.

쌀 대신 콩…국산 생산 늘리는 정부

정부는 애초 이러한 콩 수입 절감 정책을 국내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쌀 과잉 생산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추진해왔다. 쌀 소비 감소로 남는 논에 콩 등 다른 작물을 심도록 2022년부터 ‘전략작물직불제’가 도입되었고, 논에 콩을 재배하면 ㏊(헥타르)당 20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그 결과 논콩 재배면적은 작년보다 약 9천㏊ 늘어난 8만3천㏊에 달했고, 국내 콩 생산량이 크게 늘어 자급률도 30% 수준에서 내년에는 40%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식량안보 강화와 함께, 논에 콩을 심어 쌀 생산을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물논 농법을 대체해 기후변화 대응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문제는 생산 급증에 비해 소비 기반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2021년 11만 톤이던 국산콩 생산량은 2024년 15만5천 톤으로 1.4배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국산콩의 국내 소비 비중은 34.3%에서 30.5%로 오히려 낮아졌다. 정작 식품 산업에서 국산콩 수요를 늘릴 가공·유통 대책이 부족해 생산물량이 남아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올해 수매한 국산 콩 2만 톤을 평년보다 30% 저렴한 가격에 풀어 식품업계의 국산콩 활용을 촉진할 방침이다. 국산콩으로 원료 전환 등 신규 수요 창출 용도로 이 물량 절반 이상을 배정했는데, 가격 장벽만 낮추면 GMO(유전자변형작물) 논란이 없는 국산콩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또한 식품업계에 국산콩 사용 원료비를 일부 지원하고, 국산 원료로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에 최대 2천만원까지 보조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쌀 농가 소득을 보전하면서 콩 자급률을 높이려던 정책 취지가 실질적인 시장 소비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모습이다.

높은 국산 콩 가격의 현실과 원인

국산콩 소비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가격이다. 국내산 콩은 수입산보다 평균 3~5배 가까이 가격이 비싸다. 농가 생산성이 해외 대비 낮은 데다 인건비와 지대 등 생산비용이 높아 구조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농민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도 “국산 농축산물이 수입산의 1.5배 이내 가격일 때 구매 의향이 있다”고 답해, 그 이상 가격 격차가 벌어지면 소비가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 시중 두부 가격을 보면 국산콩 두부는 수입콩 두부보다 평균 2~3배 이상 비싸고, 일부 프리미엄 제품은 4배 가까운 가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27만 톤 (약 13% 감축)
수입콩 공급 감축
농림축산식품부
15만5천 톤 (2024년, 1.4배 증가)
국산콩 생산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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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곡물 자급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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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차이가 벌어질까. 낮은 단위 면적당 수확량과 높은 생산비가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은 농가당 경지 면적이 좁고 영세하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려운 구조다. “우리나라는 작은 토지 면적으로 인해 토지 생산비가 높다”는 분석처럼, 콩 한 톤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자체가 수입산보다 훨씬 많이 들고 물류비용까지 더해진다. 여기에 최근 이상기후로 잦아진 가을장마, 병충해 등으로 작황이 불안정한 점도 생산 원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국산콩은 재배 농가가 분산돼 있어 균일한 품질과 수량 확보가 쉽지 않다. 대량 생산되는 미국·브라질산 콩에 비해 국내산 콩의 낟알 크기나 성분 편차가 커 가공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온다. 결국 가격은 비싸고 물량·품질 안정성은 낮다 보니, 두부·장류 등의 제조업체들이 선뜻 국산 원료로 전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비자는 국산콩 제품에 지갑을 열까

콩 수급불안과 함께 식탁 물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서민단백질 공급원인 두부 가격은 올여름부터 꿈틀대기 시작해, 지난 7월 소비자물가 조사에서 전월 대비 1.2% 올라 생활필수품 39개 품목 중 상승률 2위를 기록했다. 두부업계는 “콩값 인상분이 반영되면 두부 소매가격이 연말까지 추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이미 일부 마트에서는 수입콩 두부 한 모 가격이 3천 원을 넘어서고, 국산콩 두부는 5천 원 안팎까지 치솟았다. 소비자 김모(54)씨는 “콩이 남아돈다는데 두부값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되묻고는 “그래도 국산콩이면 건강에 좋을 것 같아 가끔 사먹지만, 가격이 더 오르면 수입산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격 민감도는 소비자 선택에 결정적이다. 농민신문·국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6%가 식료품 구매 시 ‘국산 여부를 고려한다’고 답했지만, 가격이 동등하거나 1.5배 수준까지일 때라는 단서가 붙었다. 무려 51.8%의 소비자는 수입 농산물에 관심 갖는 이유로 “가격이 저렴해서”를 꼽았고, “맛과 품질이 좋아서”라는 응답(17.6%)보다 훨씬 많았다. 즉, 국산 프리미엄에 지불할 용의가 있더라도 그 한계선은 비교적 뚜렷한 셈이다. 현재처럼 국산콩 두부가 수입산 대비 3배 가까운 가격이라면, 일반 소비자 대다수는 지갑 열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일부 소비층에서는 “GMO 걱정 없고 믿을 수 있는 국산이라면 다소 비싸도 찾는다”는 인식도 있어, 고소득·건강지향 소비자를 겨냥한 프리미엄 시장은 꾸준히 형성되어 있는 상태다.

최근 5년간(2019~2024년) 의식주 물가가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실제물가와 체감물가 간 괴리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경제인협회가 16일 발표한 ‘민생물가 상승 요인 분석 및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주거와 식생활, 의류를 합친 의식주 물가는 연평균 4.6% 상승하며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연평균 2.8%)보다 1.8%p 높았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최근 5년간(2019~2024년) 의식주 물가가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실제물가와 체감물가 간 괴리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경제인협회가 16일 발표한 ‘민생물가 상승 요인 분석 및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주거와 식생활, 의류를 합친 의식주 물가는 연평균 4.6% 상승하며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연평균 2.8%)보다 1.8%p 높았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국산 콩 확대, 가격·품질 지원이 관건

결국 국산 콩 소비를 늘리기 위해선 정부의 구조적 보완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농업계의 중론이다. 우선 수입산과의 가격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원이 핵심 과제로 지목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한울 연구원은 “국산콩 원료 구매 안정성을 위해 가격 차액의 일정 부분을 보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산콩을 원료로 사용한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직접적인 수요 촉진책도 고려할 만하다. 일본의 경우 국산 대두를 활용하는 가공업체에 정부가 kg당 수천 원대의 보조금을 지급해 수입산과의 가격차를 메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국산 원료 사용 업체에 정부 보조가 편성됐지만, 업계는 “지원 규모가 미미해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 하나 중요한 건 품질 균일화와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다. 국산콩의 품질 편차를 줄일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우수 품종 보급과 산지 집하장 정비에 투자하고, 계약재배 확대를 통해 수요처가 원하는 일정 물량을 제때 공급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두부용 콩, 장류용 콩 등 용도별로 표준화된 품질 규격을 정하고, 이에 맞춘 생산·유통을 지원하면 기업들의 국산콩 채택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국산콩 자급률 제고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다만 속도 조절과 시장 흡수력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향 정책은 생산농가와 식품업계 모두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국산콩 육성을 위해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생산→수매→판매’의 선순환 구조를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유통구조 효율화로 소비자 가격을 낮추고, 농가에는 직불금 등 소득안정 지원을 늘려야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된다”고 강조한다. 값싼 수입콩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토종 콩이 식탁의 주역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가격경쟁력과 품질 신뢰를 뒷받침할 정책적 정밀 조율이 요구되고 있다.

중소 두부·두유 제조업체농림축산식품부(정부)국산콩 재배 농가
이 기사가 던지는 질문
식량 자급률 제고라는 정책 목표와 수입콩에 의존해온 영세 식품업계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미·중 무역전쟁이 보여준 '식량의 무기화' 시대에, 한국은 실질적인 식량안보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