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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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빗장 뜯어내고 ‘방송’ 켠 권력… 관료사회 덮친 ‘시놉티콘’의 역설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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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2일 오전 10시,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4동 대회의실. 평소라면 두꺼운 방음문 뒤에서 은밀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을 신년 업무보고 현장에 낯선 붉은색 ‘ON AIR’ 사인이 켜졌다. 회의실 삼면을 포위한 수십 대의 방송 카메라는 관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있었고, 유튜브와 주요 지상파 채널을 통해 접속한 동시 시청자 수는 순식간에 50만 명을 넘어섰다. 각본은 없었다. 사전에 조율된 ‘마사지(내용 다듬기)’도 없었다. 그저 날것 그대로의 질문과 식은땀 흐르는 답변, 그리고 적나라한 침묵만이 존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단행한 ‘부처 업무보고 전 과정 생중계’는 대한민국 행정의 문법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과거 청와대 영빈관에서 덕담을 주고받으며 끝나던 ‘그들만의 리그’는 이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공개 청문회’가 됐다. 누군가에게는 꽉 막힌 속을 뚫어주는 ‘사이다’였지만, 단상에 선 관료들에게는 잔혹한 ‘공개 처형’이나 다름없었다.

11일 서울역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관별 업무보고(기획재정부·국가데이터처) 모두 발언 생중계 화면이 나오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부처별 업무보고가 생중계되는 건 처음이며, 국민주권정부의 국정철학을 국민과 나누고 정책 이행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11일 서울역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관별 업무보고(기획재정부·국가데이터처) 모두 발언 생중계 화면이 나오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부처별 업무보고가 생중계되는 건 처음이며, 국민주권정부의 국정철학을 국민과 나누고 정책 이행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Part 1. 책 속에 숨은 100달러, 그리고 식은땀

“잠깐만요, 사장님. 보고서 넘기지 마시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의 보고를 끊고 마이크를 잡았다. 2025년 12월 12일, 역사적인 첫 생중계 업무보고 현장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이학재 사장이 준비한 ‘동북아 허브 공항 도약 전략’이라는 거창한 PPT 화면은 무색해졌다. 대통령의 손에는 실무자들이 보고서 귀퉁이에 작게 적어 놓았을 법한, 혹은 별도 첩보를 통해 입수한 메모가 들려 있었다.

“지금 보고서 12페이지를 보면 첨단 보안 검색 장비 도입으로 빈틈없는 감시 체계를 구축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관세청 적발 사례나 제보들을 종합해보면, 두꺼운 책 사이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끼워 수만 달러를 밀반출하는 소위 ‘책치기’ 수법이 여전히 횡행한다고 합니다. 엑스레이(X-ray) 판독으로 이게 걸러지지 않는다는 게 사실입니까?”

 

예상치 못한 ‘디테일’한 질문이었다. 거시적인 공항 운영 계획과 비전 선포를 준비했을 이 사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보안 검색 절차상 기술적 한계가 일부 있을 수 있으나…”라며 말끝을 흐리자, 대통령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아니, 묻는 말에 답을 하세요. 왜 자꾸 본질을 회피합니까? 사장님이 저보다 업무 파악이 덜 된 것 같습니다. 이러고도 대한민국 관문인 공항 보안을 책임진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국민이 지금 이 장면을 다 보고 계십니다.”

이 장면은 여과 없이 전국에 송출됐다. 댓글 창은 폭발했다. “속이 다 시원하다”, “대통령이 실무자보다 더 잘 안다”, “저런 사장을 믿고 어떻게 공항을 쓰나”라는 반응이 폭주했다. 뒤이어 보고에 나선 관세청장 역시 통관 업무의 비효율성을 지적받으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카메라는 당황한 관료의 떨리는 손끝과 굳어버린 표정을 잔인할 정도로 클로즈업했다.

이날의 생중계는 단순한 ‘업무 점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료주의’라는 거대한 성벽을 향해 날린 직격탄이었다. 국민은 환호했지만, 세종 관가는 공포에 질렸다. 한 고위 공무원은 “마치 발가벗겨져 광장에 선 기분”이라며 “앞으로 보고 자료를 만들 때 정책의 타당성보다 대통령의 예상 질문을 방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19개 부처, 5개 처, 18개 청, 228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개 검증’의 서막은 그렇게 열렸다.

Part 2. 12·3 트라우마가 만든 ‘투명성’이라는 무기

왜 이재명 정부는 이토록 위험하고 파격적인 ‘리얼리티 쇼’를 선택했을까. 단순히 대통령의 개인기나 장악력을 과시하기 위함일까? 그 해답을 찾으려면 시곗바늘을 정확히 1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 그리고 이어진 전임 대통령의 탄핵.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 사건은 현 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을 결정짓는 결정적 ‘트라우마’이자 강력한 명분이 됐다.

전임 정부의 몰락은 ‘밀실’에서 시작됐다. 소수의 측근에 둘러싸인 불통, 국민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결정된 정책들이 낳은 참사였다. ‘용산 벙커’의 폐쇄성은 결국 국민적 저항을 불렀고, 탄핵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탄핵 이후 집권한 이재명 정부에게 ‘투명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개방을 택한 것이다.

청와대 강유정 대변인은 이번 생중계 결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명확합니다. 밀실은 부패와 오판을 낳고, 광장은 신뢰를 낳습니다. 이번 조치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국민과 가감 없이 공유하고, 정책 집행 과정의 투명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결단입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극히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 모든 과정을 국민께 보고드리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정치 공학적으로 뜯어보면 이는 더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며 내놓은 카드가,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권위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중계 화면 속에서 대통령은 무능한 관료를 질타하고 바로잡는 ‘유능한 해결사’이자 ‘개혁의 사령관’으로 비친다. 이는 국민에게 “나는 전임자와 다르다. 나는 관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장악하고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다. 즉, 투명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행정부 전체를 단숨에 제압하려는 고도의 통치 기술이 숨어 있는 셈이다.

 

Part 3. 판옵티콘의 역전, ‘시놉티콘’의 시대

사회학자들은 이 기이한 현상을 미셸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Panopticon·원형감옥)’의 개념을 빌려 설명하되, 그 방향성이 역전되었다고 분석한다. 판옵티콘이 중앙의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다수의 수감자를 감시하는 구조라면, 지금 이재명 정부가 만든 무대는 ‘시놉티콘(Synopticon)’이다.

노르웨이의 범죄학자 토마스 매티슨(Thomas Mathiesen)이 주창한 이 개념은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다수의 대중(국민)이 소수의 권력자(관료)를 감시하는 ‘역감시’의 구조를 의미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5천만 국민을 ‘감시자’로 고용했다. 20세기 관료제가 서류 더미와 결재 라인 뒤에 숨어 권력을 행사했다면, 21세기의 시놉티콘 체제하에서 관료들은 투명한 유리방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이 시스템 하에서 관료들은 전례 없는 ‘이중의 압박’을 받는다. 눈앞에 있는 대통령의 날카로운 질책(인사권)과 카메라 너머에 있는 국민의 실시간 여론(지지율)이다. 과거 ‘복지부동(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음)’이라 불리던 관료 사회의 생존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납작 엎드려 있다가는 국민의 눈에 ‘무능’과 ‘직무 유기’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숨을 곳이 없다’는 공포, 이것이 시놉티콘이 만들어내는 규율 권력이다.

한 행정학 교수는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분석했다. “관료제는 기본적으로 전문성을 담보로 한 폐쇄성을 띠기 마련인데, 생중계는 그 벽을 강제로 허물어버렸다. 국민이 직접 관료를 평가하는 시스템은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가 가미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관료들이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관료를 타격할 때, 관료는 방어할 수단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Part 4. 쇼룸 민주주의의 그림자: 효율인가, 포퓰리즘인가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광장 행정’의 취지는 혁신적이지만, 현장에서 감지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우려는 국정 운영이 자극적인 ‘쇼(Show)’로 전락할 가능성이다. 이를 일각에서는 ‘쇼룸(Showroom) 민주주의’라고 꼬집는다.

첫째, ‘망신 주기’ 논란과 관료 사회의 위축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의 사례처럼, 공개적인 면박은 해당 기관장의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힌다. 리더가 전 국민 앞에서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그 조직의 영(令)은 서지 않는다. 이는 조직 전체의 사기 저하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관료들의 태도 변화다. 이제 공무원들은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해서 성과를 낼까’보다 ‘어떻게 하면 카메라 앞에서 대통령의 질문을 잘 방어할까’에 골몰할 것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정책 제안보다는, 실패 확률이 0에 수렴하는 ‘책 잡히지 않을’ 안전한 보고서만 양산될 위험이 크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복지부동이다.

둘째, ‘보여주기식’ 보고의 양산이다. 생중계는 본질적으로 지루하면 안 된다. 시청률과 반응을 의식하게 되면, 깊이 있는 정책 논의나 장기적인 국가 비전보다는 당장 국민의 눈길을 끌 만한 단기적 성과나 화려한 언변이 중시될 수 있다. 복잡한 수치와 제도가 오가는 정책 토론은 지루하다. 반면, “책 속에 숨긴 100달러” 같은 에피소드는 자극적이고 대중적이다. 국정이 예능화될 때, 정작 중요한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업무보고를 앞두고 각 부처는 프레젠테이션(PT) 디자인 업체를 섭외하고, 리허설만 수차례 진행하는 등 ‘방송 준비’에 막대한 행정력을 낭비했다는 후문이다.

셋째, 포퓰리즘의 유혹과 정책의 경직성이다. 대통령이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정책 사안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단순화하거나, 여론에 영합하는 방식으로 관료들을 몰아붙일 경우, 국가의 장기적인 정책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 ‘사이다 발언’에 중독되면, 복잡하고 지루하지만 국가 백년대계에 꼭 필요한 정책 논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예를 들어, 연금 개혁이나 에너지 요금 인상 같은 인기 없는 정책은 생중계 현장에서 다뤄지기 힘들 것이다.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관료를 희생양 삼는 정치는 쉽지만, 망가진 시스템을 복구하는 것은 어렵다.

Part 5. 혁신과 포퓰리즘 사이,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2025년 12월, 대한민국은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생중계 국정보고’는 분명 과거의 밀실 행정과 결별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국민은 내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저 높은 곳에 있는 공직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권리를 되찾았다. 꽉 막힌 관료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무사안일주의에 경종을 울린 것도 분명한 성과다. “나보다 업무 파악이 안 된 것 같다”는 대통령의 일갈은, 모든 공직자에게 보내는 서늘한 경고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방법론이 ‘시놉티콘’이라는 감시의 기제에만 의존한다면, 그 끝은 피로감일 수 있다. 다수의 시선이 소수를 감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인민재판식 여론몰이로 변질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이다 질책’은 당장은 시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정은 예능이 아니다. 호통 뒤에 실질적인 대안이 따르지 않는다면, 혹은 그 호통이 관료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어 소신 있는 정책 제안을 막는다면,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인천공항의 보안 구멍을 메우는 것은 대통령의 호통 자체가 아니라, 호통 이후에 마련될 치밀한 시스템과 예산, 그리고 실무자들의 묵묵한 헌신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 관건은 지속가능성이다. 생중계가 일회성 이벤트나 군기 잡기용 쇼로 끝나지 않으려면, 보여주는 형식을 넘어 소통의 내용을 채워야 한다. 질책보다는 토론이, 지시보다는 경청이 오가는 생중계가 되어야 한다.

이제 막 문을 연 ‘유리방 정부’. 투명해진 벽 너머로 보이는 것이 국민을 위한 치열한 고민의 현장일지, 아니면 잘 연출된 한 편의 정치 드라마일지. 리모컨을 쥔 국민의 시선은 이제 세종청사의 당황한 관료들이 아닌, 그 거대한 판을 짠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카메라는 켜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연출된 정의’가 아니라 ‘증명된 성과’다. 이것이 2025년 겨울, 우리가 이 위험한 생중계를 숨죽여 지켜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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