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년 대한민국 여의도에 때아닌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흥미로운 건 이 전쟁의 양상이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주류 사학계라는 ‘전문가 집단’과 이에 반기를 든 ‘정치권+재야 사학’의 대결 구도에 가깝다.

최근 이재명 대표의 발언으로 촉발된 ‘식민사관’ 논란은 빙산의 일각이다. 시계를 조금만 돌려봐도 이 현상이 진영을 가리지 않는 고질병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접시꽃 당신'의 시인이자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었던 그조차 국회의원 시절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 지도를 문제 삼으며 학계와 거친 설전을 벌였다. 그는 강단 사학계의 정설을 '식민사관의 잔재'로 몰아세우며 유사역사학계의 논리에 힘을 실어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 진영도 다를 바 없다. 과거 보수 정권 시절 유력 정치인들이 환단고기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고대사를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왜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강단 사학계를 ‘기득권 카르텔’로 몰아세우며, 가짜 고대사에 러브콜을 보낼까. 답은 간단하다. 그게 ‘남는 장사’라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열린 해수부(해양경찰청) 업무보고를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열린 해수부(해양경찰청) 업무보고를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Point 1: 돈 안 드는 ‘국뽕’ 마케팅

정치인의 제1 목표는 재선(再選)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제를 살려 지갑을 두둑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렵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며, 성공 확률도 낮다.

이때 등장하는 대체재가 바로 ‘민족주의(Nationalism)’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본래 대륙을 지배하던 위대한 민족이었다”는 유사역사학의 서사는 가성비 최고의 정치 상품이다.

생각해 보라. 팍팍한 현실,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지정학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중에게 “사실 당신들의 조상은 대단했다”고 추켜세워 주는 것만큼 달콤한 위로가 어디 있나.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0원’이다. 팩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의 억눌린 자존심을 긁어주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 그만이다. 정치 공학적으로 볼 때 유사역사학은 가장 효율적인 ‘정서적 마약’이다.

✚ Point 2: ‘카르텔’ 프레임과 반지성주의

하지만 무턱대고 “우리는 위대했다”고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적(Enemy)’이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적을 필요로 한다. 유사역사학을 정치 무대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정된 적은 바로 ‘강단 사학계’다.

논리는 정교하다. “우리의 위대한 역사가 쪼그라든 건,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주류 사학자들 때문”이라는 음모론을 설파한다. 이 순간, 평생 고문헌과 씨름해 온 학자들은 하루아침에 ‘기득권 카르텔’이자 ‘청산해야 할 친일 부역자’가 된다.

이는 전형적인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전략이다. 대중은 어렵고 복잡한 전문가의 말보다, 쉽고 자극적인 유튜버의 주장에 더 열광한다. 정치인은 이 흐름에 편승한다. 학계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전문가를 조롱함으로써, 정치인은 ‘기득권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투사’의 이미지를 획득한다. 지지층 결집 효과는 덤이다.

✚ Point 3: 외교적 자충수, 그 위험한 부메랑

문제는 이 ‘내수용 정치 쇼’가 국경을 넘어가면 치명적인 독(毒)이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유사역사학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논리적 근거가 사라진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자. 그들의 논리 구조는 “신화도 역사고, 현재 영토 내의 과거사는 모두 중국사”라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이 “검증은 필요 없고, 고대 영토는 넓을수록 좋다”는 식의 주장을 펴면 어떻게 될까. 중국의 억지 논리를 우리 스스로 승인해 주는 꼴이 된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료 비판이라는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을 버리고 ‘국민 정서법’으로 역사를 재단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일본을 비판할 명분을 잃는다. “한국은 팩트보다 감정이 앞서는 나라”라는 낙인은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입지를 좁히는 족쇄가 된다.

정치가 역사를 탐내면 나라는 병든다. 정치인들이 유사역사학에 기대는 건, 현재의 비전을 보여줄 능력이 없다는 방증이다. 미래를 이야기해야 할 정치인이 수천 년 전 땅따먹기 신화에 매달리는 모습은 비극을 넘어 희극에 가깝다.

지금 여의도에 필요한 건 가상의 영토 확장이 아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의 위기를 직시하는 용기다. 대중의 귀에 달콤한 ‘국뽕’을 속삭이는 대신, 쓰디쓴 현실의 ‘청구서’를 내밀고 해법을 논의해야 한다. 역사는 역사학자에게 맡겨라. 그게 정치가 할 일이고,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