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역 택시 돌진 사고와 보행자 안전의 책임
2026년 1월 2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앞에서 70대 택시가 인도로 돌진해 40대 여성 1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친 사고가 일어났다. 퇴근길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가 믿어온 최소한의 안전은 누구의 책임으로 성립하는가.
종각역 일대는 평일 저녁이면 지하철 출구와 횡단보도에 발걸음이 겹친다. 한 해가 바뀌는 첫 주 사람들은 새 달력을 주머니에 넣고 익숙한 길을 건넌다. 그런데 통계가 말하는 길의 현실은 여전히 거칠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이 집계한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2,521명으로 줄었지만 보행 중 사망자는 920명으로 늘었고 전체 사망자 중 보행자 비중은 36.5퍼센트였다. 숫자가 낮아졌다는 소식이 곧 안전을 뜻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고는 오후 6시 5분께 발생했다. 종각역 앞 도로에서 택시가 승용차 2대와 잇따라 추돌했고 충격은 인도와 신호 대기 구역까지 밀려 들어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퇴근길의 질서에서 구조 현장으로 바뀌었다. 숨진 이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보행자였고 다친 사람들에는 보행자와 택시 승객 그리고 다른 차량 탑승자가 함께 포함됐다.
사고 뒤 수사는 한 가지 단어에 집중됐다. 약물이다. 운전자는 현장에서 체포됐고 약물 간이검사에서 모르핀 성분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경찰은 약물운전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1월 5일 영장을 기각하며 약물 복용과 사고의 인과를 다툴 여지가 있고 도주 우려가 낮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도심의 횡단보도에서 벌어진 비극이 법정에서는 검사 결과의 해석과 절차의 정밀도로 옮겨간 셈이다.
여기서부터 논점은 개인을 넘어선다. 운전자의 연령이 70대 후반이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맞이한 고령화의 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경찰청 인용 보도에 따르면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중 65세 이상 비중은 2024년 14.9퍼센트까지 늘었다. 늘어나는 고령 운전자와 함께 늘어나는 것은 운전의 권리가 아니라 운전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의 총량이다. 그리고 그 위험은 운전자에게만 머물지 않고 차 바깥의 보행자에게 가장 먼저 닿는다.
제도는 이 위험을 관리하려고 움직여 왔다. 여러 지자체가 고령 운전자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고 서울시는 반납 시 20만 원 교통카드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확대해 왔다. 같은 자료에서 65세 이상 면허 1명이 반납하면 연간 약 42만 원의 사회적 비용이 감소한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어디까지나 선택을 전제한다. 강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사회는 결국 다른 형태의 안전장치인 보행 공간의 물리적 보호, 교차로 설계, 차량의 오조작 방지 기술, 약물 복용과 운전 사이의 가이드라인으로 책임을 분산시키려 한다. 하지만 책임이 분산될수록 사고가 났을 때 누구도 완전히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역설도 함께 커진다.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은 현대가 풍요를 생산하는 동시에 위험을 생산하는 체제라고 진단한다. 산업과 기술이 만들어내는 위험은 특정한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통제되지 않고 제도와 과학 그리고 규범의 판단을 통해 관리되면서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 이론은 위험이 사회적 쟁점이 되는 순간 무엇을 안전이라 부를 것인가라는 질문이 정치와 제도의 중심으로 이동한다고 말한다.
종각역 사고와의 교차 지점은 분명하다. 첫째 택시의 돌진을 단순한 개인의 과실로만 봉합할지 아니면 도심 이동 시스템이 생산한 위험으로 볼지의 선택이 남는다. 둘째 약물 간이검사와 법원의 판단은 과학적 수치가 곧바로 사회적 진실이 되지 못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셋째 가난은 위계적이고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문장은 위험이 누구에게나 도달할 수 있음을 말하지만 동시에 보행자처럼 더 취약한 위치에 선 사람에게 위험이 더 먼저 그리고 더 크게 닿는 현실을 역으로 비춘다.
결국 오늘의 질문은 보행권, 고령화, 책임이라는 세 단어로 압축된다. 보행권은 이동의 권리이자 생존의 권리인데 우리는 그 권리를 차도의 양보에 맡겨두고 있지 않은가. 고령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면허 제도, 대중교통의 촘촘함, 지역사회 돌봄과 연결된 구조의 문제인데 사회는 여전히 사고가 터진 뒤에야 고령 운전자를 호출한다. 책임은 더 복잡하다. 운전자의 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약물 복용자에 대한 안내 체계, 택시업계의 건강 관리, 교차로의 방호 시설, 신호 대기 공간의 물리적 경계를 구축하는 책임이 함께 성립해야만 한다.
종각역 앞 횡단보도는 그날 이후에도 사람들로 가득 찬다. 우리는 매일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길을 건넌다. 다음번 돌진은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멈추게 만들 것인가. 안전은 쟁취보다 유지가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