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12·3은 내란'…법원이 연 문, 닫히지 않은 균열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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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부장판사(가운데)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하기 위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운데)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하기 위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이진관 부장판사가 348쪽 분량 판결문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방청석 곳곳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415일. 사법부가 그날 밤을 '내란'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한 첫 판결이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징역 23년에 법정구속. 전직 총리가 법정에서 수갑을 찬 채 끌려 나간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재판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군인 1605명, 경찰 3790명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점거한 행위를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으로 봤다. 한덕수는 그 내란의 '중요임무 종사자'로 판단됐다. 특검 구형(징역 15년)을 8년이나 웃도는 중형이다.

판결문이 복원한 그날 밤 대통령실 풍경은 섬뜩하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의사를 밝힌 직후, 한덕수는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했다. 변호인 측은 "국무위원들 뜻을 모아 계엄을 막으려 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일축했다. 세종시에 있는 장관들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화상회의를 제안한 기록이 없고, 대접견실에서 한덕수는 자기 휴대전화만 들여다봤을 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결정적 장면은 계엄 선포 이후다. 재판부에 따르면 한덕수는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이행 방안을 논의했다. 대통령실 CCTV에는 한덕수가 그 지시 이행을 "독려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재판부는 "행정권이 특정 언론사 발표를 전면 금지하는 건 헌법이 절대 금지한 검열"이라고 못 박았다.

무게추는 '친위 쿠데타'라는 규정에 있다. 재판부는 12·3 사태를 '위로부터의 내란'으로 분류하면서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을 경시하고 위반함으로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 자체를 뿌리째 흔들었다"고 적었다. 이 논리대로라면, 과거 '아래로부터의 내란' 판례는 양형 기준이 될 수 없다.

판결문에는 현재 진행형 위기 진단도 담겼다. 재판부는 "'계몽적 계엄', '경고성 계엄'을 당연하다는 듯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2025년 1월 19일 서울서부지법 폭동처럼 정치적 입장을 위해 헌법과 법률을 쉽사리 위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경고했다. 12·3 내란이 이런 인식을 양산하거나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 흐름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덕수 판결 이틀 전인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의 한 소극장. '서부자유변호사협회 후원 감사 총회'가 열렸다. 서부지법 폭동 1주년 기념행사였다. 참석자 50여 명 앞에서 극우 유튜버 고성국은 "사법 역사상 우파로부터 집단적 항의를 받은 건 서부지법 사태가 처음"이라며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속됐다 풀려난 가담자들은 스스로를 '투사'라 불렀고, 객석에서는 오열과 박수가 뒤섞였다.

징역 23년
한덕수 징역형
서울중앙지법
군경 5,395명
계엄 동원 인력
서울중앙지법 판결문
73.4%
서부지법 실형 비율
서울서부지법 백서

서부지법이 지난해 12월 펴낸 백서를 보면, 폭동 사건 기소자 141명 중 94명에게 1심이 선고됐고, 이 가운데 69명(73.4%)이 실형을 받았다. 재산 피해 6억 2천만 원, 복구 비용 11억 8천만 원. 법원은 가담자 상대 손해배상 소송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그날의 폭력을 '저항'이나 '항쟁'으로 포장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13일 결심 공판에서 "국민들은 계엄령이 계몽령이 됐음을 알고, 불가피한 결단이었다고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선고는 오는 2월 19일 예정이다.

한덕수 판결도 끝이 아니다. 한덕수 측은 26일 양형 부당을 주장하며 항소장을 냈고, 특검 역시 일부 무죄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에서 '12·3 내란'의 성격과 가담자 책임 범위가 다시 다퉈진다.

남은 질문은 무겁다. 왜 국가 최고위층이 헌법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가능했나. 국무총리는 왜 비상계엄을 막지 않았고, 왜 언론 검열 지시 이행을 독려했나. 민주주의를 지키라고 설계한 제도들이 왜 그날 밤 멈춰 섰나. 판결 이후에도 폭력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왜 계속되는가.

재판부는 판결문 끝에 이렇게 썼다. "12·3 내란은 잘못된 주장이나 생각을 양산하거나 그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법원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문 너머 질문들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2월 19일, '내란 우두머리' 선고가 예정돼 있다. 415일간 쌓인 물음에 사법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시선이 다시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한덕수 전 국무총리헌법재판소·사법부
이 기사가 던지는 질문
국가 최고위층이 헌법을 스스로 부정하는 내란을 저질렀음에도 왜 민주주의 수호 제도들은 그날 밤 작동을 멈췄는가?
법원의 '내란' 규정 판결 이후에도 폭력과 위헌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사회적 균열은 어떻게 봉합될 수 있는가?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