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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와서야, 57만 명의 안부를 매일 묻는다

복지부 여름철 취약계층 대책과 『돌봄 선언』이 묻는 돌봄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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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보건복지부가 2026년 여름철 취약계층 보호대책을 내놨습니다. 6월 1일부터 '폭염중대경보'를 새로 두고, 이 경보가 내려지면 혼자 사는 취약노인 약 57만 명의 안부를 매일 두 번 확인하겠다는 거죠. 경로당 식사는 주 5일로 늘리고, 여름방학에 끼니를 거를 우려가 있는 아이들도 찾아 챙깁니다. 더 케어 컬렉티브의 돌봄 선언은 이 대책을 반기면서도 묻습니다. 돌봄은 왜 늘 위기가 닥쳐서야 보이기 시작할까요.

폭염이 닥치면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에어컨 없는 단칸방의 노인, 끼니를 거르는 아이, 한낮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이죠. 보건복지부가 2026년 여름철 취약계층 보호대책을 내놓은 이유입니다. 핵심은 더위가 심할 때 이들을 먼저 찾아가 챙기겠다는 겁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새 경보입니다. 정부는 6월 1일부터 폭염특보의 최상위 단계로 '폭염중대경보'를 신설했습니다. 이 경보가 내려지면 혼자 사는 취약노인 약 57만 명에게 하루 두 번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가 안부를 확인하죠. 더위가 가장 위험한 사람에게 가장 자주 닿겠다는 설계입니다.

밥상도 챙깁니다. 경로당 6만9000곳의 식사 제공을 주 5일로 점차 늘리고, 그에 맞춰 양곡비를 지원합니다. 학교 급식이 멈추는 여름방학에는 전국 5600여 마을돌봄기관을 중심으로 끼니를 거를 우려가 있는 아이들을 찾아 식사를 잇습니다. 폭염과 방학이라는, 돌봄의 빈틈이 벌어지는 두 시기를 메우려는 겁니다.

게다가 여름은 점점 길고 독해집니다. 기상청은 올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60%로 봤죠. 정부가 폭염 경보의 최상위 단계까지 새로 만든 것 자체가 위험의 크기를 말해 줍니다. 기후가 거칠어질수록 돌봄의 청구서도 함께 두꺼워지는 셈입니다.

더 케어 컬렉티브가 쓴 The Care Manifesto(돌봄 선언)는 이런 대책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돌봄을 너무 가볍게 여겨 왔다는 것. 돈 버는 일은 한가운데 두면서, 누군가를 먹이고 씻기고 안부를 묻는 일은 늘 곁가지로 밀어 왔다는 거죠.

저자들은 그런 사회를 '돌봄에 무심한 사회'라고 부릅니다. 효율과 성장을 앞세우는 동안, 돌봄은 가족이나 여성, 저임금 노동자에게 조용히 떠넘겨졌습니다. 그러다 재난이 닥치면 그제야 그 빈자리가 드러나죠. 코로나가 그랬고, 이제는 해마다 더 길고 뜨거워지는 여름이 그렇습니다.

책의 또 다른 진단은 '돌봄의 위기'입니다. 돌볼 사람은 줄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느는데, 사회는 그 일을 여전히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남겨 둔다는 거죠. 그 틈을 시장에 맡기면, 돈 있는 사람만 더 나은 돌봄을 삽니다. 폭염 앞에서 누가 더 위험한지가 결국 계층을 따라 갈리는 이유입니다.

책의 문제의식을 따라가 보면 이번 대책이 달리 보입니다. 57만 명에게 매일 안부를 묻겠다는 약속은 분명 진전입니다. 동시에 질문도 생기죠. 왜 그 안부를 '폭염중대경보'라는 특별한 순간에만 매일 챙길까. 평소에 그들은 누구와 연결돼 있을까. 돌봄이 비상 대책으로만 작동하면, 경보가 풀리는 순간 그 연결도 함께 느슨해집니다.

돌봄 선언이 힘주어 말하는 건 돌봄을 '비상용'이 아니라 '평상시의 기반'으로 두자는 것입니다. 소방서나 상하수도처럼, 돌봄도 사회가 늘 깔아 두는 바탕이 돼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폭염이 오든 한파가 오든 그 위에서 사람을 받칠 수 있습니다. 경보가 울려야 켜지는 안전망은, 경보가 늦으면 함께 늦으니까요.

한국의 사정은 이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듭니다. 혼자 사는 노인이 빠르게 늘고, 가족이 곁에서 돌보던 시절은 저물고 있습니다. 취약노인 57만 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평소의 관계망이 그만큼 얇아졌다는 신호이기도 하죠. 폭염은 그 얇아진 그물을 가장 먼저 찢습니다.

책의 또 다른 열쇳말은 '상호의존'입니다.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모두가 생애의 어느 길목에서 돌봄을 주고받는다는 거죠. 그렇게 보면 취약계층 보호는 약자를 위한 시혜가 아니라, 언젠가 나와 내 부모도 기대게 될 공동의 바닥을 까는 일입니다. 오늘의 57만 명은 내일의 우리이기도 하니까요.

한 가지 더. 매일 두 번 57만 명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은 누군가의 노동입니다. 생활지원사와 사회복지사, 마을돌봄 종사자들이 발로 뛰어 그 약속을 채우죠. 돌봄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돌보는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는 질문과 한 몸입니다. 책은 돌봄 노동의 값을 제대로 매기지 않는 한 돌봄 사회는 구호에 그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번 대책을 깎아내릴 일은 아닙니다. 폭염중대경보 신설도, 경로당 식사 확대도, 결식아동 발굴도 모두 필요한 걸음입니다. 다만 돌봄 선언의 시선으로 보면, 그 걸음이 여름 한 철로 끝나지 않고 사철 이어질 때 비로소 '체계'가 됩니다. 대책의 성패는 발표가 아니라, 9월이 와도 그 안부 전화가 계속 울리느냐에 달려 있죠.

폭염이 와서야 안부를 묻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늘 한 박자 늦습니다. 책이 건네는 제안은 단순합니다. 돌봄을 가장자리에서 한가운데로 옮겨 놓자는 것. 57만 명의 여름이 경보가 풀린 뒤에도 안녕하기를 바란다면, 그 자리를 옮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폭염은 가장 약한 곳을 먼저 칩니다

폭염중대경보 시 취약노인 57만 명을 하루 두 번 확인합니다. 위험이 계층을 따라 갈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돌봄은 비상용이 아니라 기반이어야 합니다

『돌봄 선언』은 경보가 울려야 켜지는 안전망의 한계를 짚습니다. 사철 이어질 때 비로소 체계가 됩니다.

3
돌봄을 늘리려면 돌보는 사람부터

매일 57만 명의 안부는 생활지원사·사회복지사의 노동입니다. 그 노동의 값을 매겨야 약속이 구호에 그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