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앉는 값, 열 집 중 아홉 집 웃돈
전세 갱신 보증금 인상과 「사람, 장소, 환대」
| 구분 | 수치 |
|---|---|
| 2026년 9월 3주(9월21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 | 0.10% |
| 한국부동산원 자료에서 서울 강북 | 14개 |
| 같은 기간 종전보다 보증금 | 10% |
| 2025년 서울 아파트 갱신계약 중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비중 | 49.3% |
| HUG 전세보증 사고 규모(2021년) | 5790억원 |
| HUG 전세보증 사고 규모(2022년) | 1조1726억원 |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세입자는 지난 8월 5억2500만원이던 전세를 7억원에 다시 계약했습니다. 2년 사이 1억7500만원, 33.3%가 올랐습니다. 떠나면 비슷한 조건의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세입자는 집주인이 부른 값을 받아들였습니다.
신림동만의 일은 아닙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26년 6~8월 서울 아파트 전세 갱신계약 1만3580건 가운데 89.6%인 1만2169건에서 보증금이 올랐습니다. 열 집 중 아홉 집이 더 많은 돈을 내고 같은 집에 머물렀다는 뜻입니다. 종전보다 10% 넘게 오른 계약도 12.6%에 이릅니다.
머물려면 값을 치러야 하는 자리입니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2015, 문학과지성사)에서 환대를 '사람에게 자리를 주는 것, 혹은 사회 안에서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책은 '사람은 사회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되는가, 사람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가'라는 질문에서 논의를 엽니다. 자리를 얻는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 이 물음은 보증금을 올려야 집에 남을 수 있는 세입자의 처지와 겹칩니다.
■ 떠날 수 없어 눌러앉는다
세입자가 집을 옮기지 못하는 흐름은 숫자로도 드러납니다. 전체 전세 거래 중 갱신계약 비중은 작년 42.1%에서 올해 1~8월 50.7%, 최근 3개월 53.8%로 높아졌습니다. 신규로 집을 구할 때와 재계약할 때의 평균 보증금 격차도 작년 5517만원에서 올해 9154만원으로 벌어졌습니다. 새집을 구하는 순간 더 큰 목돈이 필요하니 있던 자리에 남는 쪽을 택하는 셈입니다.
전셋값 자체도 오릅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로 2026년 9월 3주(9월 21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0.10% 올랐고 수도권은 0.16%, 서울은 0.19% 상승했습니다. 서울 강북 14개구 중에서는 노원구가 0.47%, 성북구와 강북구가 각각 0.42% 오르며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값이 오르는 동네에서 세입자가 쥘 선택지는 얼마나 될까요?
김현경은 자리가 없는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봅니다. 환대란 그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의 전세 시장에서 자리를 지키는 조건은 환대가 아니라 지불 능력입니다.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만 머물고 치를 수 없는 사람은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 청구권을 다 쓰면 그다음은
세입자를 지키려는 제도가 없지는 않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한 차례 더 머물면서 인상폭을 5% 안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2025년 서울 아파트 갱신계약 중 이 권리를 쓴 비중은 49.3%로, 전년 32.6%보다 크게 늘었습니다. 많은 세입자가 제도의 보호막을 먼저 꺼내 들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 보호막을 한 번 쓰고 나면 다음이 없다는 점입니다. 2025년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은 갱신계약의 보증금은 평균 7.54% 올랐습니다. 2026년 1~4월 서울 오피스텔에서도 청구권 사용 건수가 2014건에서 2595건으로 28.8% 늘었고 갱신계약 대비 사용률은 26.7%에서 30%로 올랐습니다. 권리를 서둘러 소진한 뒤 맞이할 재계약의 부담은 고스란히 세입자 몫으로 남습니다.
머물기 위한 비용은 빚으로도 쌓입니다. 한국은행 집계로 2026년 2분기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8조원으로 전분기말보다 25.9조원 늘었고 가계대출 잔액은 1891.3조원으로 24.9조원 증가했습니다. 2026년 7월말 은행 가계대출은 1194조8000억원으로 최근 석 달간 19조9000억원 불었습니다. 다만 전세자금대출은 2026년 5월 6000억원, 6월 7000억원, 7월 8000억원씩 줄어 전체 대출이 늘어나는 흐름과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전세를 월세로 일부 돌리는 반전세도 늘고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중 반전세 전환 계약은 2026년 6~8월 3043건으로 전년동기 2791건보다 9.0% 늘었습니다. 목돈을 올려주기 어려운 세입자가 매달 나가는 돈을 늘려서라도 자리를 지키는 쪽을 택한 거죠.
■ 자리를 지키는 값은 누가 떠안나
자리를 둘러싼 비용은 세입자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증사고는 2021년 5790억원에서 2022년 1조1726억원, 2023년 4조3347억원, 2024년 4조4896억원으로 불었다가 2025년 1조2446억원으로 줄었습니다. 2026년 1~4월 사고는 2693억원으로 전년동기 5743억원보다 53.1% 감소했습니다. 최근 지표는 진정세를 보입니다.
그러나 쌓인 청구서는 큽니다. 2026년 7월 기준 HUG가 세입자 대신 돌려준 누적 대위변제액은 12조414억원, 5만7032건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2건 이상 보증사고를 낸 다주택 채무자 몫이 6조7993억원, 3만4152건입니다. 전체 절반을 넘는 금액이 여러 집을 굴리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소수에게서 나온 셈입니다. 자리를 지키는 비용은 과연 공평하게 나뉘고 있을까요?
김현경의 환대는 자리를 내어주는 쪽의 몫을 묻습니다. 그런데 전세 시장에서 그 자리의 대가는 세입자와 보증기관, 그 뒤에 선 사회가 나눠 집니다. 다만 숫자는 전부를 말하지 않습니다. HUG 통계는 반환보증에 가입한 계약만 잡아 가입하지 않은 세입자의 미반환 피해는 빠져 있고 전월세신고제도 임대료 변동이 없는 갱신계약에는 신고 의무를 두지 않아 보증금이 오른 계약 위주로 집계되면서 인상 비중이 실제보다 높게 잡힐 여지가 있습니다.
신림동 세입자는 1억7500만원을 더 얹고 같은 집에 남았습니다. 열 집 중 아홉 집이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사람이 자리를 얻는 조건은 무엇인가. 김현경이 던진 질문 앞에서,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만 머무는 전세의 풍경이 그 답을 대신 적고 있습니다.
2026년 6~8월 서울 아파트 전세 갱신계약 1만3580건 중 89.6%에서 보증금이 올라 세입자 대부분이 돈을 더 내고 눌러앉았습니다.
신규·갱신 보증금 격차가 작년 5517만원에서 올해 9154만원으로 벌어져 이사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HUG 누적 대위변제 12조414억원 중 6조7993억원이 다주택 채무자 몫으로, 자리를 지키는 대가가 고르게 나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