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난 한 해 동안 누군가를 돌본 적이 있는가. 아이를, 부모를, 아픈 가족을. 그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무엇이 남는가. 피로함인가, 보람인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인가. 12월의 끝자락, 국회는 조용히 하나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통합돌봄지원법. 돌봄...
2024년 12월 23일, 통합돌봄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돌봄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재원과 인프라, 그리고 노동자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법안은 이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여야가 합의했다는 수식어까지 달고 있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은 불안해하는...
여수시 웅천지구 아파트 단지. 84제곱미터 규모의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신혼부부가 내는 월세는 3만원이다. 보증금은 없다. 같은 평수 시세가 월 40만원을 넘는 지역이다. 전남도가 운영하는 '만원주택'은 이름 그대로 월세가 1만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여수에서 월세 3만원짜리 집이 나왔다고 한다. 전남도는 월 1만원 주택을 운영한다고 한다. 보증금도 없다니 청년들에겐 복음처럼 들릴 법하다. 그런데 왜 이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까. 청년 주거지원은 이제 전국 지자체의 필수 정책이 되었다. 제주는 월세를 직접 지원...
작년 한 해 동안 요양보호사가 돌본 노인은 85만 명.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약 52만 명이다. 한 사람이 평균 1.6명을 돌보는 셈이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무게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내일부터 시행될 통합돌봄법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도 여기에...
손인서는 자신의 책에서 묻는다. 한국은 정말 다문화 사회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다문화'란 대체 무엇인가. 그는 한국이 다문화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등한 권리 보장이라는 핵심이 빠진 채...
당신이 매일 지나치는 동네 경로당 앞에 놓인 의자들을 본 적이 있는가. 햇살 좋은 날이면 어르신들이 앉아 시간을 보내는 그 의자들 말이다. 그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이제 우리 사회 다섯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2024년 12월,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오후 두 시쯤이면 벤치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다. 바둑을 두는 이들, 신문을 펼쳐든 이들, 그저 햇볕을 쬐는 이들. 이 공원의 풍경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숫자는 말한다. 2024년 12월, 한국은 65세 이상...
2024년 11월, 전국시간선택제노조가 근무시간 강제 변경 폐지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2019년부터 5년간 이어진 투쟁의 결과였다. 그동안 1만6000명이 떠났고 3500명이 남았다. 시간선택제. 처음엔 일과 삶의 균형을 약속하는 제도로 등장했다. 육아나 학업을...
이세돌이 은퇴한 지 5년이 흘렀다. 그가 최근 던진 경고는 묵직했다. AI가 만드는 양극화는 바둑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당시 그의 은퇴 이유를 기억하는가. AI를 쓸 수 있는 프로기사와 그렇지 못한 아마추어의 격차가 극복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기 때문이...
23만 8천 명. 2024년 상반기 기준 전국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돌봄 노동자의 수다. 매일 아침 이들은 누군가의 얼굴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처리한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아파도 멈출 수 없다. 누군가의 생존이 이들의 손끝에 달려 있으니까. 보건복지부...
2024년 겨울이 왔다. 검찰개혁 입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제 개헌을 말한다. 제7공화국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6월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87년 6월. 그때도 시민들이 거리에 있었다. 직선제 개헌이 모든 것을 바...
한 의원이 법안 하나를 들고 국회 복도를 걷는다. 2023년 5월에 처음 제출한 강력범죄 특별법 개정안이다. 네 번째 상정이다. 그는 안다. 오늘도 심사는 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걷는다. 18개월째다. 법안 하나가 통과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강특법 3차 개정안은...
당신의 직장에 갑자기 수사권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환경부 공무원이 불법 폐기물 업체를 단속하고,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 사업주를 수사한다. 그런데 이들 중 82퍼센트가 경력 3년 미만이다. 공소시효가 뭔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소 시기를 놓친다. 특별사법경찰관, 줄...
당신이 오늘 아침 마신 물 한 잔을 떠올려보라.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그 당연함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세계기상기구가 '물 위기'를 넘어 '물 파산'이라는 표현을 썼다. 파산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를 당신은 느끼고 있는가. 2024년 발표된 보고서는 인류가...
21년. 충남 부여군에서 보건지소 5곳이 문을 닫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은산, 외산, 홍산, 임천, 석성면. 이름만 들어도 농촌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들이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서였다. 공중보건의사가 10년 새 4분의 1로 줄었다는 통계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은, 그 숫자...
10월의 마지막 주, 한 중학교 교무실. 정규교사들이 성과급 명세서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복도 끝 작은 탁자에 기간제교사 몇 명이 모여 있다. 그들의 손에는 명세서가 없다. 담임을 맡고, 야간자율학습을 감독하고, 주말 보충수업까지 했지만 성과급 지급 대상이 아니다. 교...
일본의 한 고등학교 교실. 4월이면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만나는 학생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자기소개를 듣는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1년 계약직이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또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는 이런 비정규직...
대만 경제부 장관 궈즈후이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10개월 전 멈췄던 마안산 원전 2호기를 다시 가동하기로. 그의 손에는 TSMC가 제출한 전력 사용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255억5000만킬로와트시. 대만 전체 전력의 9퍼센트를 한 기업이 쓴다는 숫자 앞에서, 탈원...
2034년 어느 여름날, 우리는 그때를 기억할 것이다. 대만이 원전을 다시 돌리기로 결정한 2024년 10월을. TSMC 하나가 대만 전체 전력의 9퍼센트를 삼켜버리던 시절을. 기업에 전력을 우선 배정하는 정책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를. 그러나 정말 당연했을까. 반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