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의 한 대기업 회의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테이블 위엔 두꺼운 보고서들이 쌓여 있다. '기후정보공시 대응 방안', '탄소중립 로드맵', 'ESG 경영전략'. 대우건설이 2026년 공시를 앞두고 준비하는 서류들이다. 창밖의 맑은 하늘...
1969년 7월 16일,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새턴 V 로켓이 포효하며 솟구쳤다. 아폴로 11호는 달을 노리는 인류 최초의 유인 탐사선이었고, 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불가능의 경계 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를...
한국에서 기후정보공시 의무화를 앞둔 기업은 약 120개다. 2026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들이 첫 대상이 된다. 대우건설도 그중 하나다.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기후 리스크를 계산하고, 대응 전략을 수치화해야 한다. 숫자는 중립적이지 않다. 제리 뮬러의 『측정의...
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7월의 무더위 속에서도 상담 창구는 붐빈다. 그런데 이번엔 매수 문의가 아니다. 대출 규제가 바뀐다는 소문에 계약을 서두르는 이들이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단지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아버지가 초등학생 아들과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방학 특강 시간표를 확인하는 목소리. 수학 심화반이 오전 9시, 영어 회화가 오후 2시.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아이는 방학을 어떤 마음으...
김현 시인의 『입술을 열면』(민음사, 2022)는 우리가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조용하고 선명한 언어로 끌어올려, 독자의 가슴 깊이 잔잔한 공명을 일으키는 시집이다. 주말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우리는 흔히 정신없이 분주한 일상...
한 건설사 임원이 회의실 창문 너머로 아파트 건설 현장을 바라본다. 크레인은 멈춰 있고, 콘크리트 타설 일정표에는 물음표가 그려져 있다. 그는 책상 위에 펼쳐진 사업계획서를 천천히 닫는다. 숫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정책의 방향이 불분명할 때, 기업은 어떻게...
당신이 매일 출퇴근하는 길목에도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을 것이다.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모델하우스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세금 규제도 완화하겠다고 했다. 당신은 이 풍경을 보며 무엇을 떠올리는가. 내...
2035년 어느 날,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어섰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시급 5천원을 받았던 시절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의 60%에 불과하다. 법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직업재활시설이라는 이름...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웨이트리스 유니폼을 입고 첫 출근을 했을 때 자신의 박사학위가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았다. 2001년 출간된 『니켈 앤 다임드』에서 그녀는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실험을 했다. 플로리다의 식당, 메인주의 청소업체, 미네소타의 월마트. 세 곳을 전전...
당신의 노동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해도 누군가는 최저임금을 받고 누군가는 그 절반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노동의 가치를 매기고 있는 걸까. 한국일보가 보도한 장애인 노동 실태가 무겁다. 2025년 최저임금이 시급 1만 원을...
시급 635원. 2024년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근로장애인의 평균 시급이다. 최저임금의 6.3퍼센트에 불과한 숫자. 한국일보가 지적한 '장애인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는 이 숫자 하나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한 기자가 재정적자 31.2조원이라는 숫자를 들여다본다. 정부는 추경을 탓하고, 야당은 감세를 지적한다. 그는 2024년 상장사 영업이익 196조원과 2025년 4월 법인세 수입 35.8조원을 대조해본다. 숫자들 사이에서 무언가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침묵도 하나의...
2025년 4월, 재정적자가 31.2조원을 기록했다. 법인세 수입은 35.8조원. 작년 코스피 상장사들이 거둔 영업이익은 196조8161억원이었다.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기업들은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국가 재정은 갈수록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 어떤...
2025년 6월 4일, 고용노동부는 올해 최저임금 심의 일정을 발표했다. 매년 반복되는 의례다. 노사가 마주 앉아 숫자를 놓고 씨름한다. 그런데 이 테이블에 앉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들. 가사노동자, 수습 중인 노동자, 정신장애...
당신은 장애인 고용 부담금이 왜 최저임금의 60퍼센트에 불과한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내는 벌금이 한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다면, 그것을 과연 부담금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제도는 늘 선한 의도로 시작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2024년 한국의 공공기관이 발급한 종이 증명서는 약 3억 2천만 건. 한 사람당 연간 6.2장을 떼어간 셈이다. 이제 정부는 2025년부터 디지털 자격증명 시대로의 전면 전환을 예고한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신분증이나 자격증명이 스마트폰 속...
김 과장은 지갑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곧 필요 없어질 물건이었다. 회사에서 받은 공문에는 내년부터 모든 신원 확인이 디지털로 전환된다고 적혀 있었다. 플라스틱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그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이 작은 조각이 사라지면, 자신을 증명하는...
2040년쯤 되면 우리는 2025년 5월을 어떻게 기억할까. STO 법안이 통과되고, EU 가상자산 규제가 논의되고, 미국 IRA 수정안이 떠들썩했던 때로? 아마 아닐 것이다. 법안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렇게 법안 통과에 목을 매...
2025년 5월 초, 국회는 증권형 토큰 발행(STO) 법안을 통과시켰다. 디지털 자산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평가 속에 금융당국은 후속 제도 마련에 분주하다. 법안이 통과되면 세상이 바뀔까. 자본시장법 개정안 몇백 페이지가 한국의 2030세대 투자자들에게 어떤 의미일...